희망이 만일 사물이라면, 그것은 밝고 환하고 예쁜 색깔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좋은 결과를 가르키는 놈이니, 아무래도 때깔이 좋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희망을 품으면 인간은 들뜨고, 행복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는 인간을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 한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온갖 흉물들에 맞서 싸울 보석인 것이다.
그러나, 대개 이런 희망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류대를 꿈꾸던 학생은 이류대로 진학하게 되고, 짝사랑했던 상대는 다른 상대를 만나고, 대박을 꿈꾸던 창업자는 적당히 사업을 유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무래도 보통이다. 이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희망이 현실적인 결과물을 능가하는 것을 가르킨다는 점이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내일 해가 뜰 것에 희망을 품는 이는 없다. 당연한 것은 희망의 대상이 아니다. 반대로 말해 당연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희망의 대상이 되고, 당연히-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비관론자는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에 좋은 것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희망은 곧잘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지만, 어느 정도는 또한 분명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그 경계는 불투명하고, 고정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운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확률놀음을 인정하되, 타당하면서도 안정적인 효율로 배팅과 리턴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정확한 관측, 빠른 반복 실행, 반성과 학습은 그 핵심이다. 극단값에 가까운 운의 영향이 아니고서는, 분명히 그렇게 희망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런 희망은, 처음에 말했던 밝고 환하고 예쁜, 환상적인 색깔은 아니다. 보상은 현실적인 수준에 그치고, 그것도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나 이루어지는 정도일 뿐이다. 때가 묻어 있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구질구질 하다는 기분을 벗을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성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언제나 그런 색의 희망들이었다.
2009년 12월 25일 금요일
2007년 11월 5일 월요일
눈 앞이 캄캄하다는 것
사무실은 대전에 있고, 주요한 미팅은 전부 서울에서 이루어지므로 최근 들어 나는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일이 잦다. 물론 KTX를 탄다면 승차감은 훌륭하겠지만, 도착지와의 거리 문제로(주로 삼성역을 가야 하므로) 나는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를 타는 시간은 대개 자는 시간이다. 삶 자체가 사업에 매몰 되기 시작하면, 24시간은 너무도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잠 또한 같은 비율로 축소된다. 그것이 겹치다 보면 만성피로가 찾아오는 것이다. 때문에 부족했던 잠을 채우기에, 흔들거리는 차 안만큼 적합한 공간도 없다. 서울로, 대전으로 향하면서 나는 순식간에 어둠 속에 빠져든다.
괴로운 것은 잠에서 깨어날 때이다. 정차 시의 둔탁한 소음이 나를 깨우면, 빛이 눈을 덮쳐 온다.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는, 고통의 시작이다. 잠이라는게 뇌를 쉬게 하기 위한 신체의 작용이지만은, 육체의 휴식도 중요한 관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차 안에서의 잠이란게 육체에게는 가혹하기 마련이라 그 이루말할 수 없는 찌푸둥 함과 피곤은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찌됐건 내리기는 해야할 것이므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때 '어둠'이 덮쳐 온다. 눈 앞을 새까 맣게 기어오르는 어둠. 문학적 수사가 아니고, 정말로 눈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몇번을 껌뻑이면 스멀스멀 사라지는 그 어둠은 무섭기 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내 동료들은 그 어둠을 빛이라고 부른다. 지나친 냉기에 화상을 입듯, 우리가 향해 가는 지독히 찬란한 빛은 지금으로선 새카만 어둠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그러나 벤처라는 시스템에 중심에 있는 미신과도 같다. 눈을 껌뻑이며 어둠을 쫒아낼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흥이 드는 건 그런 이유이다. 기대에 사업이 비추어 성공적이지 못 할 경우 나는 학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 감흥을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믿어도 되겠지.
버스를 타는 시간은 대개 자는 시간이다. 삶 자체가 사업에 매몰 되기 시작하면, 24시간은 너무도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잠 또한 같은 비율로 축소된다. 그것이 겹치다 보면 만성피로가 찾아오는 것이다. 때문에 부족했던 잠을 채우기에, 흔들거리는 차 안만큼 적합한 공간도 없다. 서울로, 대전으로 향하면서 나는 순식간에 어둠 속에 빠져든다.
괴로운 것은 잠에서 깨어날 때이다. 정차 시의 둔탁한 소음이 나를 깨우면, 빛이 눈을 덮쳐 온다.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는, 고통의 시작이다. 잠이라는게 뇌를 쉬게 하기 위한 신체의 작용이지만은, 육체의 휴식도 중요한 관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차 안에서의 잠이란게 육체에게는 가혹하기 마련이라 그 이루말할 수 없는 찌푸둥 함과 피곤은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찌됐건 내리기는 해야할 것이므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때 '어둠'이 덮쳐 온다. 눈 앞을 새까 맣게 기어오르는 어둠. 문학적 수사가 아니고, 정말로 눈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몇번을 껌뻑이면 스멀스멀 사라지는 그 어둠은 무섭기 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내 동료들은 그 어둠을 빛이라고 부른다. 지나친 냉기에 화상을 입듯, 우리가 향해 가는 지독히 찬란한 빛은 지금으로선 새카만 어둠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그러나 벤처라는 시스템에 중심에 있는 미신과도 같다. 눈을 껌뻑이며 어둠을 쫒아낼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흥이 드는 건 그런 이유이다. 기대에 사업이 비추어 성공적이지 못 할 경우 나는 학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 감흥을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믿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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