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8일 월요일

일본 사람들은 서사성이 좋은 듯 하다.

일본 2ch VIP 게시판 유머 블로그

2ch에서 노닥거리는 네티즌도 저러 하거늘.. 하긴 소설 GO를 보면 양아치도 세익스피어를 읽는 게 일본이다. 문장력과 서사를 구성하는 힘은 많은 독서에서 오는 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2007년 6월 16일 토요일

따르릉~ 아프리카(Afreeca)TV여 비켜나세요..

다음(Daum)이 나가십니다.

다음, 생중계 및 실시간 개인방송 가능한 '라이브 팟' 오픈

사실상 다음이 아프리카TV와 곰TV에게 동시 침공을 시도하고 있는 형국.

곰TV야 그간 확보한 컨텐츠도 많고, 워낙 곰플레이어 보급률이 좋으며, CJ와의 연계등 제법 믿을 구석이 있지만.. 아프리카TV는 뭘로 승부 할텐가?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보러 다운로드 받은 팟 플레이어.. 개인방송을 보는데 그 화질이 무시무시하다.. 직접 보시면 알텐데, 이건 거의 경악의 수준이다.. 200kbps도 아니고 무려 2000kbps 란다... 뭐야 이거.. 무서워..


2007년 6월 14일 목요일

구라를 잘 치는 한국소설이 고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건 문학에서 큰 의미가 없다.


1.
선정적인 제목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우린 어려서부터 '진실되게 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최소한 구라가 미덕인 직업도 있다. 적절한 거짓말은, 진실을 보다 풍성하게 한다. 선의의 거짓말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문학성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다.

사실, 난 자기기만이 아닌 한은 거짓말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무한소의 협소한 특정 영역이고, 거짓은 그 여집합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물론이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가 합의한 애매함일 뿐 그것이 지시하는 진정한 본체는 아니다. 언어가 몸짓이나 그림, 기타의 것으로 바뀐다 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인류보완계획이라도 실시하지 않는 한, 거짓은 공기와 같은 것이다.

너무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로 빠진 것 같은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간단하다. 내가 말하는 거짓이란, 재산신고를 29만원으로 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거다. 제목에서 언급한 구라는 용이하게 작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구라이다. 언어가 메신저라면, 구라는 폰트와도 같다.


2.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등을 보고 있다 보면 감탄할 때가 있다. "참 잘도 가져다 붙였네"라고 말이다. 부정적 어투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것은 칭찬이다. 만화왕국에서 자라서 인지는 몰라도, 그네들은 참 별별 종류의 소재들을 내용에 '가져다 붙인'다. 그것은 과학이기도 하고, 미학이기도 하며, 철학이기도 하다. 벌레 같은 존재가 된 주인공을 통해 불황 이전의 일본 남성 라이프스타일이 시체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표현하려 했다는 등의 말(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 무라카미 류)을 보고 있으면 독자로선 재미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적인 유희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여러 모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흥미란게 중요하다. 경영학도라서 그런지 몰라도, 제대로 된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질의 재화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새로운 시장을 형성시킴에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일까? 마케팅 아닌가. 상품에 흥미거리가 많다는 건, 마케팅 당담자에겐 천군만마와도 같은 일이다.

한국 문학이 죽었다는 말이 들린 건 제법 오래된 일이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볼 땐 소득 수준에 비할 때, 한국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히 정치인이 국민을 탓할 수 없듯이, 어찌 생산자가 소비자를 탓할 수 있으랴. 어찌됐건 '팔리는 소설'을 발굴해야 할 책임은 생산자에게 있다.


3.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구라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것은 29만원이 아니라, 미노프스키 입자와 같은 것이다. 소재에 매몰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설이 현실의 알레고리를 포기하는 순간 그것은 저열한 판타지 소설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소설이 소재의 다양성을 포기해야 할 근거가 되진 않는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이고, 그 허구가 바로 구라이다. 이왕 치는 구라, 좀 풍성하게도 치면 안될까? 스토리 텔링 제대로 하자는 거다.

한국 작가들은 구라는 자제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아니면 구라를 칠 상상력이 없거나. 혹 멀쩡한 인간이 벌레가 되는 등의 구라에는 독자들이 안 속아줄거라고 믿는 걸까? 글 재주는 빼어나지만 자극적 소재로 어찌저찌 장난이나 칠 줄 아는 저열한 작가일지도 모를 무라카미 류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다면 카프카도 저열한 작가인가? 카프카를 감히 무라카미 류와 같은 위치에 놓으려는 게 아니다. 소재는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사실 나는 '구라가 적고', '포장이 적은' 문학이 싫은 소비자는 아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이우혁도, 김진명도, 원태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나 같은 올드 패션 소비자는 거의 없다. 그들은 핸드폰 문자에 "밥먹었니" 라거나 "만나자"라거나 "안녕" 이라고만 쓰면 삐지는 세대이다. 그들에게 문자를 보낼 땐, 다소 미식거리더라도 "ㅋ"나 "ㅎ"나 "+_+" 따위의 이모티콘을 붙여줘야 한다. 그것이 파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소통이고, 그래서 창조이다. 귀여니의 소설을 파괴라고 생각하지 말라. 팔리는 소설엔 다 이유가 있다. 스토리 텔링은 정말 중요한, 그러나 은근히 무시되는 기술이다. 나는 여지껏 스토리 텔링이 되지 않는데도 히트 한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창천항로를 보면, 막강한 군세와 유능한 부하들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땅에 틀어 밖혀 세상을 관망만 하는 유표를 일컳어 제갈량이 "천하와 성교해보지도 않고 (학문이란 수단을 통해)혼자 자위하며 만족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한국 작가는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뉴스 제목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스즈미야 하루히 같은 소설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김언수의 캐비닛 정도의 글은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2007년 6월 11일 월요일

ZDNet Korea 홈페이지

ZDNET Korea

개인적으로 애용하는 IT 뉴스사이트. 내용의 질에 있어서 이 만한 사이트도 찾기 힘들다. IT 벤처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조언, 정보를 얻는 사이트랄까. 벌써 반년이 넘게 모든 기사를 다 읽고 있는데(물론 프린터 리뷰 이런 건 논외)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실로 우수한 이 IT 뉴스사이트에 대해 열 받는 건, 접속이 잘 안된단 거다....
...이뭐..


2007년 6월 9일 토요일

UCCC 애드시스템을 보고 땅을 치다.

http://adsystem.uccc.co.kr/


동영상 제작자와 플랫폼이 수익을 분배하는 모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가 되왔던 사항이지만, 자료를 퍼트리는 '배포자'에게 수익을 주는 시스템은 신선하다.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 뿐이 아니다. 카페나 블로그에 자동 업로드하는 기능등 배포자에게 여러 기술적 편의또한 제공하고 있다.

UCCC(유씨씨커뮤니티)는 이 공격적 운영을 통해 제법 재미를 보는 모양이다. 랭키닷컴 랭킹에 따르면, 전체 순위 37,097위(2007/02/14) 였던게 불과 넉달정도 만에 320위(2007/06/06)까지 뛰어 올랐으니 말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악의적으로 동영상을 도배하는 경우가 발생해, 일부 커뮤니티에서 차단까지 한 상황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발목잡힐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조금 정교하게 시스템을 가다듬는 다면, 부정적 요소를 최소화 하면서도 활발한 배포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굿 아이디어 아닌가.

....라지만 난 이미 올해 초에 작성한 벤처창업경진대회에 제출한 서류에 그런 아이디어를 써 놓았단 말이다. 아이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C&C 레드얼렛을 하다가, "RTS에서 생산의 프로세스를 없에고, 주어진 유닛을 상성과 지형등을 이용해 즐기게 하는 고도의 전략적 게임을 내놓으면 어떨까?"라고 먼 훗날 직접 제작할 게임을 구상하던 내 앞에 던져진 Myth는 전 세계적으로 온갖 찬사를 받으며 성공해 내 가슴을 후벼파 놓은바 있다.
지금 준비하는 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옥 같은(?) 내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이곳 저곳에서 실현되고 있다. 물론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아직 안전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라고 믿고 싶다. 얼마 안 남았다..


2007년 6월 8일 금요일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2를 보다가..


"시스템이 원하면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얼떨결에 살인범으로 몰린 후 자신은 무죄라고 말하는 벨릭에게 변호사가 해주는 말이다. 짝짝짝. 난 책을 보다 이런 구절을 만나면 밑줄을 친다. 말 자체도 멋지거니와, 주인공 형제를 억압하던 부당한 시스템의 대표 겪이던 그가 이제 시스템의 피해자로 도치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런 언어유희는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런데 이런 도치의 미학은, 비단 벨릭의 불행에 국한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모든 캐릭터가 그렇다. 열심히 제거하고 다녔더니 졸지에 자기가 제거대상이 된 켈러맨도, 악을 미워하다 보니 자기가 악이 되버린 마혼도, 악랄하게 명령을 내리지만 결국 자기도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킴도, 권력의 정점에 서지만 내려올 수 밖에 없는 대통령도.. 이 드라마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PAD MAN이 있지 않느냐고? 물론 그는 모든게 베일에 쌓여 있으니 뭐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양반, 의외로 공처가일지도? 뭐 어찌됐건, 다들 자신의 감옥에서 탈출하고자 허우적 댄다. 재미있는 건 그들의 감옥을 지키는 간수장은 스콧 필드(와 아이들) 아니겠느냐는 사실이다.

결국 모두가 사냥꾼이자 사냥감이란 얘기인데... 실로 흥미롭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현대적으로 각색된 게 프리즌 브레이크일 것이다. 근데 여기서 다시 문두로 돌아가 볼까?

"시스템이 원하면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링컨에게 누명이 씌워진 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애시당초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런 사건에 꼬일리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설령 링컨이 현명해 졌다해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제 2의 링컨, 제 3의 링컨은 얼마든지 있다. 결국 이 폭탄돌리기 게임에서 폭탄이 터진다는 시스템에 변함이 없는 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사람들을 옥죄는 진짜 감옥은 시스템이다.
과연 프리즌 브레이크가, 제목처럼 그 감옥을 설득력 있는 형태로 부술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할리 없다. 결국 우리는 존 레논의 노래를 부르는 것 이상으론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스콧 필드도 당장 눈 앞의 감옥이 버겁다. 누군들 다를까? 시스템은 구축하기도, 저항하기도 힘들다.


2007년 6월 4일 월요일

동영상 UCC의 한계


"
세상은 물질로 이뤄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엔 세상은 이야기로 구성된 것 같다."
최일구 전 MBC 앵커의 말이다. 언어란 참 재미있다. 말도 안 되는 말로(아, 이 표현 맘에 든다) 어떤 진실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전기 신호의 교류일 뿐이라고 믿지 않는 이상, 인터넷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음이 틀림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주고 받는 데이터는 단순한 전기 신호가 아니다. 그것에는 주인공이 있고, 배경이 있으며, 내용이 있다. 무엇보다 거기엔 감동이 있다.

새로운 데이터로서 각광받고 있는 대다수의 동영상 UCC를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게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수도없이 등장하는 늘씬한 여성들의 춤동작이나, 엽기적인 실험은 우리의 눈을 손 쉽게 붙잡는다. 그러나 그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나는 내가 돌아다니는 몇몇 커뮤니티에 범람하는 동영상들을 꾸준히 살펴 보는 편이다. 하지만 대개 그 결과는 같다. 특히 그것이 UCC일땐 더욱 그렇다. 왜 우리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그런 데이터에 열광해야 하는 걸까?

구성과 표현에 있어 한 가지 해답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 장르가 이질적인 것이더라도(동영상이더라도) 이야기가 포함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지난 어린 날, 부모님의 품 안에서 들었던 자장가 같은 가락이다. 나는 미래의 내 자식에게 동영상 UCC 같은 건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다. 비교육적이니 선정적이니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먼 나라의 언어처럼, 그 본질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쇼'는 열정, 흥분 따위는 전해지지만, 그건 세상을 구성하는 것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프레디 머큐리가 피맺힌 목소리로 외친 '쇼'는 그런 게 아닐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