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30일 월요일

일기토닷컴 (가칭)

결론 안 나기로 유명하지만, 그 만큼 재미 있기로도 손에 꼽히는 논제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를 쉽게 달구며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주제가 바로 '최강'에 대한 논쟁 일 것이다. 누가 최강의 프로게이머냐, 누가 최강의 만화캐릭터냐, 누가 최강의 로보트냐, 어디가 최고의 학교냐, 누가 최고의 미남이냐.. 대상은 바뀔 지언정, 사람들은 최강, 최고란 수식어에 열광한다. 저글링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스타크래프트 대회 우승은 누가 했는지 챙기는 걸 보면, 이런 열광은 사람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간, 이런 원초적 욕망과 폭소노미를 결합한 신 개념(누구 맘대로?) 애플릿 기반의 웹 게임,
일기토 닷컴.
두둥. ....을 제작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승부, 보고 싶지 않은가? 물론 실제 게임 화면은 아니다.



이 게임은 인물들 간에 일기토를 지켜볼 수 있다. 인물 선택, 그 후 일기토 감상. 그걸로 끝.













....자, 마우스를 주소창에 가져다 대려는 당신, 잠시 릴렉스;
 
게임 자체야 이걸로 끝일지 모르지만, 사용자들의 역할은 끝이 아니다. 일기토를 할 인물을 정하는 것은 바로 사용자다. 정해진 캐릭터들 중에서 고른다는 의미 뿐만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투표를 통해, 상위 몇위 까지의 득표를 기록한 사람이 캐릭터에 계속적으로 추가된다. 크로캅과 관우의 시공간을 뛰어 넘은 대결의 감상, 더 이상 꿈이 아닌 것이다. (단 가상의 인물은 여러모에서 게임이 안드로메다로 갈 확률이 있다고 보는 바, 투표 대상은 실존 인물로 한정한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이 발상에서 한가지 문제를 발견했을 터이다. 바로 어떻게 대결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냐는 것이다. 50%로 수렴하는 대결은 의미가 없다. 금방 질릴테니까. 그렇다면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각 인물의 능력을 정해야 한다. 랜덤의 장난으로 발생하는 극히 희박한 경우을 제외하면, 왠만해선 장비가 서민정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능력치를 부여하는 것은 보통 쉬운 문제가 아니다. 상당히 상세하고 정확하다고 이름난 삼국지 시리즈의 경우에도, 일부 인물의 과대/저평가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하물며 시대를 뛰어 넘는 대결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 것인가.
이 문제는 역시 사용자의 참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구글이 '좋은 정보=사용자들이 많이 찾는 정보' 라고 규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객관적인 데이터라는 것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명확한 틀이 있을 때 유효하다. 그러나 이미 말했다 시피, 누가 그 객관성을 보장할 것인가. 나도, 당신도, 그 누구도 그럴 방법은 없다. 전자 민주주의라고 하면 오버겠지만, 나는 참여를 그 담보로 삼고자 한다. 자유로운 토론이후, 사용자들이 투표로 결정한 능력치가 곧 그 인물의 능력치가 된다. 간디의 무력은 10일까 20일까? 사용자에 달려있다. 관우의 무력은 90일까 99일까. 사용자에 달려있다! 모두가 생각하는 평균 값이 그대로 데이터가 된다. 그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기토 닷컴은 일기토를 지켜보는 게임이지만, 그 본질은 최강자 논쟁을 즐기는 것이다. 토론과 참여, 협력과 반대를 통해 최강자가 탄생한다.
기대하시라.


Maybe This Spring... Comming Soon..



2007년 4월 27일 금요일

"UCC가 비즈니스가 될 때", EMC Velocity^2 Day 세미나를 다녀오다.



인터넷 세상을 웹 2.0이란 단어가 휩쓸고 있다지만, 최소한 한국에선 그 이상으로 각광받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UCC. 최근 모종의 이유로 포탈 IT/과학 - 인터넷 섹션의 모든 기사를 읽고 있는 내게, 한 페이지에 최소 두세개는 보이는 UCC란 단어는 지겹디 지겨운 단어이다. 전 세계에서 행해지는 UCC란 단어 검색중 절반이 한국이라 하고, UCC와 각종 단어를 조합한 도메인은 한국인이 쓸어담은 형편이니 기사 제목이 그런 것쯤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UCC의 뜻은 누구나 알 것이라고 전제하고 지어낸 듯한 PCC니 RMC니 UFC니 하는 변종 단어들 마저 자꾸 튀어나온다. 한국 NO.2 포탈인 DAUM은 아예 슬로건으로 걸어 놓았다. 우리는 이미 UCC란 단어에 깊숙히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버블 속에서도 항상 재미를 보는 무리는 있는 법이다. 발 빠르게 막차 이전의 열차를 잡은 먹튀들을 일순위로 떠올려 볼 수 있겠지만, 난 그런 부류들이 차후와 차차후의 버블에 있어서도 계속적으로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몇번은 몰라도, 반복이 거듭되면 필패한다.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이 필패하는 이유가 이거다. 반대로 말하면 먹튀들의 성공은 운이란 거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버블과 관련해, 천지신명과는 독립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없을까? 있다. LOSE-LOSE게임의 전형인 도박조차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누구냐고? 두 종류이다. 하나는 뒤에서 돈 대주는 사채꾼들이고, 나머지는 자릿세를 받는 도박장 점주이다. 둘 다 게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박의 짜릿한 희열은 없을지 몰라도 이들은 조용히, 그러나 착실하게 돈을 축적해 나갈 수 있다.
그럼 UCC열풍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일단 전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들을 떠올려 보자. 생각보다 많다. 이 생소한 단어가 뜰 걸 예감하고 재빨리 책을 써 낸 사람들. 컨퍼런스 강사들. 기사거리가 없어 인터넷 뒤적거리는 기자들. 주목 받고 싶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소원성취한 몇몇 젊은이들. 하지만 좀 더 우아하게 돈을 버는 건 후자, 즉 도박장 점주.. 가 아니라 서버, 스토리지, 솔루션 업체등이다.
그 분야에서 한가닥 한다는 EMC와 디디오넷이 우아한 돈 벌기를 천명했다. 2007년 4월 27일, 강남 파이낸스 센터 18층에서 열린 'UCC가 비즈니스가 될 때'란 제목의 EMC Velocity^2 Day 세미나를 찾아갔다. 이하는 진행된 세미나의 내용이다.


1. 동영상 UCC의 현황과 전망  아프리카 tv 나우콤 IBS사업부 마케팅팀 고창남 팀장

UCC가 대세다 라는 얘기는 너무 익숙해서 그다지 영양가가 없었지만, 아프리카 TV의 포지셔닝에 대한 언급은 제법 흥미로운 주제였다. 일반적인 온디멘드 스트리밍 사이트(판도라TV, 엠엔케스트, 엠군, TV팟, 프리챌 Q, 픽스 카우, UCCC, 그외 기타)에 비해, 아프리카 TV는 라이브스트리밍을 컨셉으로 잡고 있다. 동영상 UCC란 소재로 누가 가장 성공할 지는 함부로 예측하기 힘들겠지만, 계속 끝까지 살아남는 모델은 아프리카 TV의 그것이 아닐까 했던 내 예상에 확신을 심어준 프리젠테이션이었다. 그외에 몇 개 건진 주제들을 언급해 보겠다.

* 아프리카 TV의 가능성.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보다 높은 가능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은 UCC 붐의 성립과 미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최근 UCC가 주목 받는 이유도 컨텐츠 그 자체가 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컨텐츠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동영상이야 몇년 전에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공유의 방법이 커뮤니케이션과 결합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은?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약간의 결합이 성립하고 있다. 극히 일부의 매니아들만 어찌저찌 구해서 보던 매드무비가 자연스럽게 유투브등에 업로드 돼 퍼 날라지고 리플이 달리는 걸 보면 그런 변화가 느껴진다. 어쩌면 아프리카 TV는 한발 더 진보된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 그것은 어떤 컨텐츠를 '다른 누군가와 함께 본다'는 인식이 자연스러운 아프리카 TV 플레이어의 고유한 장점이다. 아프리카 TV 플레이어는, 특별한 편집과정 없이도 방송자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개설한 채널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고, 그 과정에 일반 유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강사의 적절한 비유에 따르자면, 온디멘드 스트리밍은 게시판, 라이브 스트리밍은 채팅의 성질을 띄고 있다. 게시판보다 채팅이 우월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더 높다고 본다.

물론 그런 영광을 아프리카 TV가 달성하기 위해선 우선 채널 입장시 나오는 삼만년 광고부터 단축시킬 필요가 있다.

* 편집툴의 중요성
컨텐츠보다 중요한게 커뮤니케이션이라지만, 재미없는 컨텐츠엔 파리도 꼬이지 않으니 커뮤니케이션이고 나발이고도 없다. 결국 컨텐츠 확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보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제작 그 자체에 관여(지원이라고 표현하고 싶겠지만)하려 하고 있다. 이미 엠엔케스트는 매직원을, 아프리카는 Desktop Brodcasting을, 픽스카우나 키위는 아예 스튜디오를 사용자에게 안겨주며 자신의 플랫폼이 UCC 제작의 방법론이 되게 하려 애쓰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내 창업 아이템에서도 핵심적인 파트였는데, 미처 현실화되기도 전에 그들이 이런 니드를 찾은게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하긴 세상에 사람이 좀 많아야지..

* 동영상 UCC의 미래
카테고리의 확장을 강연자는 예언했다. 즉 남성에서 여성으로, 재미와 흥미에서 정보와 일상으로, 젊은층에서 다양한 연령층으로, 로컬에서 글로벌로, 유선에서 무선으로. 뭐 다른 건 그렇다 치고. 과연 재미와 흥미가 정보와 일상으로 확장될까?


2. 생방송 UCC 솔루션과 적용사례  디디오넷 이준호 팀장

자신들의 솔루션 광고였다. 짤막하게 정리하면
*  분산 중계지원으로 동시접속자를 엄청 많이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
*  멀티 스크린(한 화면에서 여러 채널 나오게 하는 효과)
이 정도인데,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들의 솔루션을 적용한 GSTVESHOP의 라이브 방송을 예시로 보여줬는데, 방송 퀄리티가 매우 꽤나 제법 상당했다. 살짝 놀랐다.


3. Mobile로의 서비스 확장  디디오넷모바일 변형민 과장

자신들의 솔루션 광고였다. 짤막하게 정리하면
* 모바일로도 다 할 수 있음
이 정도인데, 뭐 나 같은 모바일 폄하론자에겐 대단한 이야기다. 묘령의 여성의 동영상(어디서 본 얼굴인 거 같아 생각해 보니 한 때 떴던 대만의 조비운이란 여성)이 핸드폰상에서 스트리밍되어 재생되는 모습을 예시로 보여주었는데, 모바일이란 걸 감안하면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4. UCC 최적화 스토리지 시스템  한국 EMC 이장원 부장

한 마디로 "우리 EMC가 UCC로 사업한다는 사업자들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음."

내적으로도 영업사원에게 들을 수 있는 정보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절반 가량 외계어를 섞었음에도 부장님 포스로 내게 EMC 제품 구입의 필요성을 납득시켜 버렸다.
 
제 사업이 좀 가닥을 잡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치며.

닷컴 버블과 그 후의 웹 2.0이란 이름의 기류가 증명하듯, 현재 몰아닥친 UCC열풍도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될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생존과 패망을 결정지을까? 물론 자사 하드웨어만 사면 아무래도 상관 없을 EMC겠지만, 하드웨어는 결국 그 이용자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향후 비즈니스의 변화는 단순히 '트래픽이 증가한다'라던지 '모바일이 뜬다' 따위의 어정쩡한 명제만으론 설명할 수 없을 터이다. 지금의 UCC열풍이 그랬듯, 앞으로도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좀 더 구체적이고 생산성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고민했다면 참석자들은 물론 자신들에게도 더 가치있는 세미나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UCC를 제목으로 잡아 놓았지만, 실질적으로 UCC 자체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하드웨어 홍보행사였다.
 
물론 예쁜 가방을 받아온 나로선 큰 불만은 없다.

2007년 4월 26일 목요일

내가 블로깅을 싫어했던 이유 2


                                         왜 기분이 별로인지 이제부터 설명하겠다.


1. 블로그는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블로그의 커뮤니케이션 포지션은 다소 모호한 면이 있다. 장중한 토론을 나누기엔 리플이란 공간이 너무 좁다. 또한 소셜 네트워킹을 하기엔 컨텐츠 귀속적이다. 간단히 말해, 기존의 게시판과 방명록이 가진 장점이 없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블로그는 하나하나의 article을 잡아주는 구조로 되어있고, 커뮤니케이션은 리플로 이루어진다. "좋은 이야기 잘 봤습니다." 등의 이야기야 리플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 제대로 논지를 펼쳐놓고 토론 하기엔 영 불편하다. 트랙백과 같은 방법도 이 '불편하다'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를 만들기엔 좋은가.. 내가 볼 땐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친한 관계란 특별한 사안이 아닌 이야기도 쉽게 나눌 수 있는 사이이다. 헌데 그렇게 신변잡기 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엔 매우 부적절한 공간이 바로 블로그가 아닌가 싶다. FTA와 관련한 진지한 논설글에 놓고 "요즘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물론 이 문제야 지금 내가 쓰는 스킨처럼 방명록이야 달면 그만이니 덧없는 이야기이도 하다.


2. 블로그는 구조적으로 개설자에게 압박감을 준다.

일을 몰아서 하길 즐겨하고, 다소 완벽한 결과물에 집착하는 나 같은 사람은 블로그와 같은 '일기' 형태의 공간은 꽤나 큰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업데이트 안되는 블로그는 업데이트 안 되는 홈페이지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 압박이 심해지다 보니 최근 글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시일에 다음 글을 올리고 싶어하고, 그를 위해 좋은 포스트 소재거리를 놓치기 싫어하는 발상이 me2day 같은 보조 블로그를 이용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꼭 마감에 쫒기는 만화가가 소재 아이디어 노트를 챙기는 형국인데, 내가 볼 땐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너무 보수적이라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일기는 혼자만 볼 글로서 남 신경쓰지 않고 솔직히 적고,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자 함이라면 업데이트의 압박에서 벗어나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는 순간 내놓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블로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중간 하다.


3. 블로그는 내 맘대로 안된다.

주로 디자인에 대한 문제이다. 단순히 어떤 이미지를 상단에 놓느냐 마냐를 떠나서, 레이아웃이 상당히 고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게 아쉽다. ..하긴 스킨받아 쓰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가..


4. 정보가 총체적이지 못하다.

어떻게 보면 나의 블로그 질색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게 바로 이 항목이리라. 대개의 경우 블로그는 조각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할 뿐, 총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간단히 예를 들면, 에반게리온이란 에니메이션과 관련해 자기 나름의 해석이나 평가를 적어 놓은 글 정도야 블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각 편의 스토리,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의 이야기, 관련 자료등을 포괄적으로 모아 놓은 블로그는 찾기가 힘들다. 에반게리온 관련 글, 에반게리온 태그는 많을지 몰라도, '에반게리온 블로그'는 드물다는 것이다(있긴 하나?).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오히려 각 항목에 심화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불편'하지 않는가. 내가 에반게리온 해석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닌데, 블로그 사이트를 이동해 다니며 각각의 정보를 따로 얻어야겠는가?
물론 이런 불편은 내 개인적인 취향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다. 필요한 그 하나의 정보로 충분한 사람에게 이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뭇잎보다는 나무를, 그 보단 숲을, 그 보단 산을 좋아한다. 같은 논리로, (때로는 편파적일진 몰라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 까지 자신의 눈으로 정리한 '완성품'을 나는 보고 싶다. 어느 뮤지션의 특정한 곡도 듣고 싶지만, 그보다는 그 뮤지션의 삶과 음악 전체를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여지껏, 블로그를 통해 그런 목적이 달성된 개인적 경험은 거의 없다. 농산물 전문가, IT전문가, 미국 전문가, 국제관계 전문가등을 따로 만나는 것보단 그냥 FTA전문가 한명을 만나는 것이 FTA를 이해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블로그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구조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수평적으로 각각의 article을 늘어놓는 블로그란 형태에서 하나의 article로 다루기 힘든 분량의 내용에 대해선, 분명한 주제를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내용을 조직하고 전시하기엔 효과가 떨어지는 문제가 큰 것 같다. 하나 하나 벽돌을 쌓는게 만드는 입장에서 편할지야 모르지만, 벽돌만으로 만들 수 있는 건물이란 한계가 있다. 일부 뛰어난 블로거는 놀라운 필력과 관리로 특정 주제에 대한 포괄성을 획득하기도 하지만, 그런 블로그조차 '그 대단한 블로거의 블로그'란 느낌이지, '그 주제에 대한 블로그'란 느낌은 희박하다.


5. So what?

사실.. 아무리 궁시렁 거려도, 블로그는 쓸만한 물건이다. 다만.. 어쩌면, 블로그는 훨씬 더 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언급한 요소와 관계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2007년 4월 25일 수요일

내가 블로깅을 싫어했던 이유 1

블로그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듯이, 언제 블로그란 단어가 내 인생에 끼어들었는지도 정확한 기억이 없다. 대충 21세기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는 정도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시작된 블로그 찬양에 대해 내가 몇가지 일관된 불만사항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것들은 나를 뒤처진 수용자로 만들었다.

20세기말, 나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방명록은 당시 각광받던 퓨라드를 깔았고, 게시판은 블루보드인지 뭔지 하는 대충 무료배포되는 놈으로 줏어왔던 것 같다. 그 때의 내 디자인 솜씨는 깔끔한 페이지를 만드는 수준도 되지 못해, 개인적으로 예쁘거나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레이아웃에 덕지덕지 붙이는 수준이었다. 그 수준이 궁금하다면, 마이스페이스에 다수의 개인페이지들을 떠 올려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외적으론 그렇게 질이 낮은 홈페이지였음에도, 내 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꽤나 큰 시간을 들여 관심있는 정보를 편집해 놓았기 때문이다. 몇가지 게임과 에니메이션 혹은 만화에 대한 소개와 평론따위가 게재되었고 어찌저찌 알고 찾아온 사람들은 내 글과 자료에 후한 평판을 늘어놓았다. 어떤 작가의 경향, 혹은 해석에 대한 왈가왈부식으로 시작된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내 삶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내 사이트를 찾아온 이들 중엔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사람도 많았지만, 지속적으로 방문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그들과 일상사에 대해 떠들고, 가끔은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을 듯한 뉴스로 토론하고. 그러한 공간으로서 내 홈페이지는 제법 많은 역할을 해냈다.

블로그가 홈페이지를 대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이, 결국 내 판단에 결정적인 잣대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몇년 전 내 대답은 '아니오'였다. 물론 그 대답은 '정답이 아니오'가 되었다. 블로그와 홈페이지는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존재이니, 내 판단이 틀린 것도 아니다라고 구차하게 변명하고도 싶다. 하지만 이유여하야 불문, 손님이 떨어진 음식점의 주방장은 자숙해야 할 필요가있다. 하긴, 이 글이 블로그에 쓰여지는 것에서 이미 나의 패배는 분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내가 블로깅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스스로의 통찰력에 대한 자성과 웹을 바라보는 내 관점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면, 불과 몇년 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술하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부터가 본문인데.. 자세한 스토리는 다음편에.

넋두리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 해야겠다.


2007년 4월 24일 화요일

이리, 블로그를 열다.

구체적인 통계나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도, 블로깅이 근래의 대세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이 큰 흐름을 친절한 언론들은 두려움 혹은 경외의 심정으로 침 튀기며 중계하고 있고, 드디어 나는 브라운관 밖의 시청자에서 벗어나 플레이어로서 이 게임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네이버 블로그와 블로거닷컴에 시험적인 페이지를 만들어 봤지만, 대상에 대한 지배력을 중시하는 나의 성향에 의해, 직접 설치하는 테터툴즈 블로그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사실 나는 끝까지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에 망설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순간도 그렇다. 아직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급속도로 보수화된 기술 수용 행태가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RSS니 트랙백이니 하는 단어들은 아직도 내게 공허하게 들린다. 언제 부터인가 의미를 아는 것과 그것을 체득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고 있고, 그것이 갈수록 심해지는 기분. 블로깅은 그런 작은 거슬림의 대표주자로, 가슴 속에서 따끔거린 대상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블로깅은 여러 면모에서 내가 지키려고 했던 영토의 담장 기둥 아래에서 시큼한 부식작용의 향을 풍기는 존재이다. 구체적인 이유 몇 가지가 있는데, 그에 대한 언급은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어찌 됐건, 그런 내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담장을 허무는 첫 글을 지금 쓰고 있다. 내 영토에 토끼가 들어올지, 사자가 들어올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이 공간에 대해 내가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도, 담장이 허물어진 이상 뜻대로 만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희망과 공포의 양면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이 밖의 세계는 나에게 신천지이다. 담장은 나를 지키기 위해 밖의 세상을 가려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음 비행기를 타던 심정이 이랬던 것 같다.

비행기를 탈 때 어땠느냐고? ...귀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