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6일 목요일

내가 블로깅을 싫어했던 이유 2


                                         왜 기분이 별로인지 이제부터 설명하겠다.


1. 블로그는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블로그의 커뮤니케이션 포지션은 다소 모호한 면이 있다. 장중한 토론을 나누기엔 리플이란 공간이 너무 좁다. 또한 소셜 네트워킹을 하기엔 컨텐츠 귀속적이다. 간단히 말해, 기존의 게시판과 방명록이 가진 장점이 없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블로그는 하나하나의 article을 잡아주는 구조로 되어있고, 커뮤니케이션은 리플로 이루어진다. "좋은 이야기 잘 봤습니다." 등의 이야기야 리플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 제대로 논지를 펼쳐놓고 토론 하기엔 영 불편하다. 트랙백과 같은 방법도 이 '불편하다'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를 만들기엔 좋은가.. 내가 볼 땐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친한 관계란 특별한 사안이 아닌 이야기도 쉽게 나눌 수 있는 사이이다. 헌데 그렇게 신변잡기 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엔 매우 부적절한 공간이 바로 블로그가 아닌가 싶다. FTA와 관련한 진지한 논설글에 놓고 "요즘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물론 이 문제야 지금 내가 쓰는 스킨처럼 방명록이야 달면 그만이니 덧없는 이야기이도 하다.


2. 블로그는 구조적으로 개설자에게 압박감을 준다.

일을 몰아서 하길 즐겨하고, 다소 완벽한 결과물에 집착하는 나 같은 사람은 블로그와 같은 '일기' 형태의 공간은 꽤나 큰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업데이트 안되는 블로그는 업데이트 안 되는 홈페이지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 압박이 심해지다 보니 최근 글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시일에 다음 글을 올리고 싶어하고, 그를 위해 좋은 포스트 소재거리를 놓치기 싫어하는 발상이 me2day 같은 보조 블로그를 이용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꼭 마감에 쫒기는 만화가가 소재 아이디어 노트를 챙기는 형국인데, 내가 볼 땐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너무 보수적이라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일기는 혼자만 볼 글로서 남 신경쓰지 않고 솔직히 적고,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자 함이라면 업데이트의 압박에서 벗어나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는 순간 내놓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블로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중간 하다.


3. 블로그는 내 맘대로 안된다.

주로 디자인에 대한 문제이다. 단순히 어떤 이미지를 상단에 놓느냐 마냐를 떠나서, 레이아웃이 상당히 고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게 아쉽다. ..하긴 스킨받아 쓰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가..


4. 정보가 총체적이지 못하다.

어떻게 보면 나의 블로그 질색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게 바로 이 항목이리라. 대개의 경우 블로그는 조각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할 뿐, 총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간단히 예를 들면, 에반게리온이란 에니메이션과 관련해 자기 나름의 해석이나 평가를 적어 놓은 글 정도야 블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각 편의 스토리,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의 이야기, 관련 자료등을 포괄적으로 모아 놓은 블로그는 찾기가 힘들다. 에반게리온 관련 글, 에반게리온 태그는 많을지 몰라도, '에반게리온 블로그'는 드물다는 것이다(있긴 하나?).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오히려 각 항목에 심화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불편'하지 않는가. 내가 에반게리온 해석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닌데, 블로그 사이트를 이동해 다니며 각각의 정보를 따로 얻어야겠는가?
물론 이런 불편은 내 개인적인 취향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다. 필요한 그 하나의 정보로 충분한 사람에게 이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뭇잎보다는 나무를, 그 보단 숲을, 그 보단 산을 좋아한다. 같은 논리로, (때로는 편파적일진 몰라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 까지 자신의 눈으로 정리한 '완성품'을 나는 보고 싶다. 어느 뮤지션의 특정한 곡도 듣고 싶지만, 그보다는 그 뮤지션의 삶과 음악 전체를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여지껏, 블로그를 통해 그런 목적이 달성된 개인적 경험은 거의 없다. 농산물 전문가, IT전문가, 미국 전문가, 국제관계 전문가등을 따로 만나는 것보단 그냥 FTA전문가 한명을 만나는 것이 FTA를 이해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블로그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구조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수평적으로 각각의 article을 늘어놓는 블로그란 형태에서 하나의 article로 다루기 힘든 분량의 내용에 대해선, 분명한 주제를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내용을 조직하고 전시하기엔 효과가 떨어지는 문제가 큰 것 같다. 하나 하나 벽돌을 쌓는게 만드는 입장에서 편할지야 모르지만, 벽돌만으로 만들 수 있는 건물이란 한계가 있다. 일부 뛰어난 블로거는 놀라운 필력과 관리로 특정 주제에 대한 포괄성을 획득하기도 하지만, 그런 블로그조차 '그 대단한 블로거의 블로그'란 느낌이지, '그 주제에 대한 블로그'란 느낌은 희박하다.


5. So what?

사실.. 아무리 궁시렁 거려도, 블로그는 쓸만한 물건이다. 다만.. 어쩌면, 블로그는 훨씬 더 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언급한 요소와 관계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댓글 2개:

  1. 조목조목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아티클 단위로 만들어지고, 태깅으로 군집화되는 구조의 단점인것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그래도 블로그를 하다보면 이것도 먼가 더 큰 것을 위한 습작처럼 생각될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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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eflect9 - 2007/09/14 00:02
    정확히 지적해 주셨네요. 저도 블로그의 글들이 '무언가 더 큰 것을 위한 습작'이른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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