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3일 일요일

리더는 선택한다.

비즈니스건, 개인사 이건 간에 성취의 과정에는 자신이 본디 의도한 것 만큼 달성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다이어트 이후의 몸무게가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고,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생각보다 쓸모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택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믿게 하거나
둘째. 실제로 충분하게 만드는 것

개인사는 재끼고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첫째 방법은 주로 마케터의 임무이고, 둘째 방법은 주로 개발자의 임무이다.
첫째 방법은 자칫 기만이 될 수 있으나, 현실적인 문제들에 훌륭한 보완책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개발자들이 자신 만큼 멍청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고 해서 꼭 회사가 망하리란 법은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세상이 살기 좋아지진 않겠지만.
둘째 방법은 본질에 충실한 것일 수도 있으나, 자칫하면 고리타분한 원칙론에 매몰될 수도 있다.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든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개발자에게의 충분함이란 세상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회사가 망하고 나서 깨닫는 건 비참하지 않는가? 뺀질한 마케터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는 자기위안은 가능할지 몰라도 말이다.

유감스러운 건 둘 중 어느 하나도 틀리지만은 않으며, 둘 중 어느 하나도 옳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둘 중 하나만이, 혹은 모두가 필요하기도 하며, 때로는 모두가 필요 없기도 하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들에 명쾌한 패턴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웃기는 건 만사가 이런 식이라는 것이다. 이슈는 수만가지임에도. 분명한 건 리더는 괴롭다는 것이다.

결국 올바른 선택을 하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니, 사실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다. 최소한 결과론적으로나마 올바른 선택이란 건 실존한다.

리더가 목표로 조직을 이끄는 자라고 했을 때, 결국 리더의 중대한 역할은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자다. 방법론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리더는 일단 이 사실 자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 자리의 중대함에 짖눌려 선택 자체를 회피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생각만큼 받아들이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겠지만, 이 선택은 열이면 열 결과가 안 좋더라. 어찌됐건 이것만 분명히 할 수 있다면, 증권 애널리스트와 경쟁했던 원숭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결국 선택하고, 실행해서, 성공하면 된다.


2007년 12월 4일 화요일

저작권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저작권 위반을 통해 커다란 이득을 챙기는 자들도 소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저작권을 위반하는 사람들은 그 위반 행위로 (최소한 금전적으로는) 별 재미를 볼일 없는 일반 네티즌인 경우가 많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왜 범법을 저지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지르고 싶기 때문이며 저지르고 얻는 이득(주로 만족감이 될 것이다)이 자신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보다 작기 때문이다. 이 매커니즘에 이견은 없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범법의 이유가 간단하므로, 그것을 막는 원칙도 간단할 것이다. 아주 논리적으로 접근해 보자.

1. 저지르고 싶지 않게 만든다.
예컨대 노상방뇨를 하는 건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는 인식을 퍼트린다면, 적당한 배설욕구는 참게 될 것이다. 문화로 계도하는 것- 이상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익명성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는 웹은 그런 매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캠패인을 벌여도 소용 없음이 먼 옛날에 증명되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저작권과 관련한 캠패인들이 저작권 존중의 대가로 제공하는 가치가 즉각적이지 않고 실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앞으로도 어쩔 수가 없다. 따라서 1번은 이 이슈를 놓고 보건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다.

2. 리스크를 높인다.
저작권자들이 바라 마다하지 않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저작권법을 강화하고 적발을 강화하고. 그러나 이 부분은 여러 애로사항이 있다. "법을 어기는 나쁜애들을 혼내주는게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용적이진 않다.
모든 법은 금지와 처벌이라는 매커니즘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처벌이다. 특정한 행위에 대한 처벌 하나도 법 전체의 효과와 포괄적으로 작용한다. 저작권법 하나만이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때문에 아무리 그것이 실로 중대한 사회 문제더라도, 법이 그 문제를 비교적 효과적으로 해결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법은 최후의 보루기 때문이다. 으랏차~ 하고 법이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면 안이한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기다려도 정말 충분한 억제력이 발생할 수 있느냐가 미지수라는 점이다. 예컨대 거리에 침을 뱉는 행위를 생각해 보자. 싱가폴과 같이 매우 강한 처벌이 있다면 웬만큼 삼키기 싫은 침이 아니라면 뱉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행위가 한국에서는 그리 강한 억제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중국까지 가면 말도 못할 정도라고 한다. 왜?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법이 절대적인 도덕률을 따르기 보단 그 사회가 지닌 특성과 상황, 그리고 그때 그때 발생하는 여러 이슈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런 일련의 과정이 그리 논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공중문화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통해 확연히 개선되었던 것 등이 그런 예이다. 이번 자살사건과 관련한 소동 또한, 어떤 형태로 법이 사회적 이슈와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돌발성이 짙다. 이런 걸 대안으로 마냥 견지하기엔 불안하지 않을까?

결론은 리스크를 높이는 것은 가능은 하나 그 진행양상을 컨트롤 하기 용이치 않아, 쉬운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3. 다른 방법을 찾는다.(구조상 이 부분이 주제임은 짐작하셨으리라 믿는다.)

중요한 건 저작권 위반을 저지르는 구조 자체이다. 이미 말했다시피 저작권 위반을 저지르는 이유는 저지르고 싶기 때문이며 저지르고 얻는 이득이 자신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보다 작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 우리는 1,2번을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전제를 조금 더 파고들어 보자. 정말로 사용자들은 저작권 위반을 저지르고 싶은 걸까? 아니 내가 말해 놓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물론 그들은 누군가의 강요로 저작권 위반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고 싶어서 그런 행위를 한 게 맞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이 하고 싶은 행위란 게 정확히 무엇이냐는 거다. 총칭해서 '저작권 위반 행위'라고 적어 놨지만, 그들이 하려 한건 '펌'이나 '공유'이지 '범법'은 아니다. 물론 둘은 같은 행위이다. 그러나 같은 의미인 건 아니다.

자, 이제 슬슬 내가 제시하는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왔다.
지금 처럼 사용자들이 펌이나 공유를 할 수 있게 하면서, 범법이 아니게 할 수 없을까?
이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이런 의미이다.
지금 처럼 사용자들이 펌이나 공유를 할 수 있게 하면서, 저작권자들이 행복할 수는 없을까?
이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이런 의미이다.
지금 처럼 사용자들이 펌이나 공유를 할 수 있게 하면서, 저작권자들이 수익을 낼 수는 없을까?

개인적으로는 가능하리라 본다.
내 사업의 방향이기도 하다.


덧.
다만 현재로선 광고 말고 딱히 (충분한) 돈을 얻을 구석이 없다는 것은 문제이다. 광고는 MASS를 확보한 소수 사업자가 독식하는 구조가 성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롱테일 롱테일 하지만 웹은 경우에 따라선 로컬보다 더욱 독점이 심한 영역이다. 그런 연유로 구글의 성장과, 포탈 위주의 몸집 불리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구글을 이겨낼 새로운 업체는 광고 없이도 (광고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업체가 아닐런지.


2007년 11월 23일 금요일

이리ON 1만히트 돌파 기념

사용자 삽입 이미지
MII로 만든 얼굴 공개. 두둥.


여지껏 접해 본 아바타 캐릭터 생성 프로그램 중 MII가 가장 좋은 듯 하다. 이 툴을 쓰면서 느낀 점은 (적절한) 과장과 생략이 진실을 더 풍성하게 할수 있다는 것이다.

과장과 생략은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컨텐츠 자체를 개조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스토리베리가 추구하는 부분이다), 그것을 전달하는 유통의 구조를 건들이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네이버 검색은 '검색결과'라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구조에 있어 분명한 정책을 통해 '과장과 생략'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의 성공은 그 정책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세상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느냐이다. 문학이든 사진이든 게임이든 그것이 현실의 알레고리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철학을 놓치는 순간, 지금의 돈벌이는 단기적인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 기술과 정보가 변화무쌍하게 넘실대는 세상이지만, 언제나 우리는 인간을 직시해야한다. 어쩌면 이야말로 컨텐츠를 다루는 비즈니스가 가장 중요하게 견지해야 할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요즘 스토리베리 관련해 대외 활동을 시작 하면서 내 얼굴 사진이 간간히 노출되고 있다. 묘한 기분이다. 나 자신도 하나의 컨텐츠가 되어가고 있다.


2007년 11월 18일 일요일

엘리제를 위하여, 그 두번째 예고편.

내 블로깅은 다분히 목정성을 띄고 있다. 그럼에도 진정성을 담고 싶다.
....그런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늦어지는 포스팅의 연유는 그러하다.



그러하니 일단 이런 걸로 때우자.. 후후.. :b


2007년 11월 11일 일요일

민감한 얘기는 민감해서 곤란하고.

평이한 얘기는 평이해서 곤란하고. 불특정다수를 향한 표현이란 곤란할 따름이구나.


2007년 11월 5일 월요일

눈 앞이 캄캄하다는 것

사무실은 대전에 있고, 주요한 미팅은 전부 서울에서 이루어지므로 최근 들어 나는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일이 잦다. 물론 KTX를 탄다면 승차감은 훌륭하겠지만, 도착지와의 거리 문제로(주로 삼성역을 가야 하므로) 나는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를 타는 시간은 대개 자는 시간이다. 삶 자체가 사업에 매몰 되기 시작하면, 24시간은 너무도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잠 또한 같은 비율로 축소된다. 그것이 겹치다 보면 만성피로가 찾아오는 것이다. 때문에 부족했던 잠을 채우기에, 흔들거리는 차 안만큼 적합한 공간도 없다. 서울로, 대전으로 향하면서 나는 순식간에 어둠 속에 빠져든다.

괴로운 것은 잠에서 깨어날 때이다. 정차 시의 둔탁한 소음이 나를 깨우면, 빛이 눈을 덮쳐 온다.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는, 고통의 시작이다. 잠이라는게 뇌를 쉬게 하기 위한 신체의 작용이지만은, 육체의 휴식도 중요한 관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차 안에서의 잠이란게 육체에게는 가혹하기 마련이라 그 이루말할 수 없는 찌푸둥 함과 피곤은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찌됐건 내리기는 해야할 것이므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때 '어둠'이 덮쳐 온다. 눈 앞을 새까 맣게 기어오르는 어둠. 문학적 수사가 아니고, 정말로 눈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몇번을 껌뻑이면 스멀스멀 사라지는 그 어둠은 무섭기 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내 동료들은 그 어둠을 빛이라고 부른다. 지나친 냉기에 화상을 입듯, 우리가 향해 가는 지독히 찬란한 빛은 지금으로선 새카만 어둠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그러나 벤처라는 시스템에 중심에 있는 미신과도 같다. 눈을 껌뻑이며 어둠을 쫒아낼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흥이 드는 건 그런 이유이다. 기대에 사업이 비추어 성공적이지 못 할 경우 나는 학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 감흥을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믿어도 되겠지.


2007년 10월 29일 월요일

도전! 리트머스²

도전 슈퍼모델, 아메리칸 아이돌과 같은 TV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치기어린 열정에 숨어 있는 원석과도 같은 재능이, 시니컬 하면서도 유머감각 있는 심사위원들과의 피드백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도전자가 번쩍이는 트로피를 움켜지는 드라마는 무엇보다 그것이 실제 사실이란 면에서 흥미롭다. 우후죽순 비슷한 프로들이 생겨나는 걸 보면, 엔터테인먼트로서 우수한 포멧임은 분명한 것 같다.
 
문득 소프트 뱅크 미디어랩이 진행하는 리트머스² 의 과정을 드라마로 만들면 어찌 될까를 상상 해 봤다.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이 휘몰아치는 벤처의 세계, 과연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성공 할 수 있을 것인가. 소프트 뱅크의 하드 트레이닝 과정과 그걸 따라가는 도전자들. 가끔은 너무 힘들어 눈물도 흘리지만, 따스한 격려를 통해 부활한다. 두둥.

어떻게 하면 서비스를 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소프트 뱅크 미디어랩 입장이나, 어떻게 하면 뜰 수 있을지 고민하는 우리나.. 실제로 전파를 타다 못해 주역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진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영업 비밀 같은 민감한 부분이 있겠지만). 물론 문제는 과연 시청자가 이런 프로를 보겠느냐는 문제.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데 나라면 볼 것 같다(소뱅 미디어랩 사람들의 유머감각은 매우 뛰어나다). 이 '나라면' 만큼 애매한 것도 없기 때문에 썩 의미는 없지만.


2007년 10월 28일 일요일

내 인생 최초의 게임제작

아주 어렸을 때, 게임 제작자가 꿈이었던 적이 있다. 성인이 되면 만들 게임 리스트까지 만들었던 나는, 일찍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겨지는 아이디어들을 머리 속에 감춘 채 세상을 다 가진듯한 착각마저 했다. 그러나 나 혼자 생각한 아이디어가 아니 었어서, 하나 둘 상상 속의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아이디어 중 하나였던, "생산이란 프로세스가 제거되고 소수 유닛의 극단적 전략활용을 골자로 하는 RTS"마저 Myth라는 게임으로 완벽히 구현된 걸 보고 나는 게임 제작자의 꿈을 때려 쳤다. 그러나 내 가슴 한 구석엔, 한풀이를 못한 귀신마냥 응어리가 남아있었다. 뭐 이렇게 써 놓긴 했지만서도, 사실 새발의 피의 헤모글로빈같은 수준 밖에 안되긴 하지만. 그 정도 가슴 속 응어리를 일일히 적어 보면야 서청댐을 쌓을 정도는 될 터이니, 털털한 나는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오늘, 나는 게임 제작을 시작했다. 우리 회사에서 서비스하는 스토리베리 의 에디터를 홍보하기 위함이다. 스토리베리는 기존의 일방적으로 수용할 뿐인 스토리 텔링에서 탈피해 상호작용(Interaction)이 가능한 컨텐츠를 다룬다는 게 주요한 핵심이다. 이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은, "얼마나 다양한 상호작용 이 얼마나 쉬운 조작에 의해 제작 가능 할 것이냐?"란 문제이다. 간단하게 바꿔 말하면 "얼마나 쉽게 얼마나 대단한 컨텐츠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얘기. 쉽지 않으면 UCC 서비스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며, 대단한 컨텐츠를 만들 수 없다면 사용자들은 쉽게 질릴 것이다. 그 미묘한 밸런스에 사업의 향방이 달려 있다.

결국 최선은 직접 경험하고, 직접 느끼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터액션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컨텐츠인 '게임'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무려 RPG를(물론 제대로 된 RPG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표로서 격무에 시달리는 상황이고, 나는 프로그래밍 또한 제대로 다루지 못하므로 엄청난 대작을 만들 여유나 정신, 기술은 없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도 '이 정도는 (스토리베리를 사용한다면) 만들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 것이 내가 여지껏 믿고 추진해온 스토리베리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일이라서 만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그런 걸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클릭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덧.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중으로 회사에 착취 받는 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7년 10월 25일 목요일

스토리베리 클로즈 베타 런칭

<동영상 이후엔 클릭을 하시면서 다음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스토리베리,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
Storyberry, way to express story!

스토리베리는 클릭 앤 플레이란 데이터를 다루는 UCC서비스입니다. 클릭 앤 플레이(Click and Play. 이하 클플)이란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컨텐츠로서, 유저와 상호작용하는 멀티 엔딩, 멀티 시나리오의 구조를 특징으로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텍스트 어드벤처와 같은 게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단 게임이 아니더라도, 이 클플에는 더 많은 가능성이 숨어있습니다. 그 예들을 직접 확인하세요.
기존의 텍스트나 이미지, 동영상으론 불가능했던 새로운 컨텐츠의 지평을 스토리베리는 열고자 합니다. 스토리베리의 목표는, 다양한 표현의 자유를 제공하는 새 시대의 표현 플랫폼입니다.

..라고 주장하고 있음.

URL : [ http://storyberry.com ]                     Let's Jump!


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한글을 수출하자.

한국 웹을 발전 시킬 수 있는 정치적 결단

한국 웹을 발전시키려면, '한국어'가 더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가 아닌 지금, 현실적으로 한국어를 더 퍼트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어가 아니라, 한글이라면?

우리문자 한글 수출 안 될 이유 없다

물론 한국어의 수출와 한글의 수출은 그 의미와 효과에 있어 같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성에 있어서 더 강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7년 10월 10일 수요일

내가 배운 것과 다른 걸 원하는 세상

어릴 때 나의 성품은 그리 돈후하지 못했고, 오히려 경박함에 가까웠다. 매우 강한 지식 습득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실제로 그것을 흡수할 환경과 능력도 있었으므로 또래보다 많은 것을 알았지만, 강한 표현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 아직 어린이의 잘난척일 뿐인 논평들을 늘어 놓곤 했으니 말이다. 어른들의 책을 읽으며(초등학교 6학년 때 아담 스미스나 프로이트 따위를 읽었다), 어른들의 대화에 끼길 좋아하는, 그렇게 어른인 척 하는 아이에게, 주변의 어른들은 대게 그런 표현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물론 너는 네 또래보다 많은 것을 알고, 더 잘 표현할 줄 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인정하기 보단 오히려 깎아 내릴 것이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수레는 비었다고 생각하고, 벼는 마땅이 익으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네가 맞춰가야 한다."

나는 그 분들의 진정어린 충고에 "저는 너무 익어서 고개를 숙이다 못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꼳꼳해진 상태이며, 수레가 꽉 차다 못해 넘치다 보니 시끄러운 것이에요."라고 농으로 응수하는 영악함과 경박함을 견지했다. 그러나 주변인들과의 반복되는 만남에서, 계속되는 클레임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선의의 포교자만큼 골치아픈 것도 없는 법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어릴 적의 화려한 선방(?)을 생각해 볼 때, 놀랍다면 놀랍고 우습다면 우습게도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그 종교에 귀의한 상태이다. 나는 가벼움을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가볍지 않고자 하게 되었다. 레크레이션이라도 하면 나가 춤을 추고 대단히 잘춘다란 칭찬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던(못 추면 물론 안 나감) 아이는, 사진 찍히는 것 조차 꺼림직해 하는 성인이 되었다. MBTI검사에서 높은 자기 주관성(T)을 기록하는 나 조차 이렇게 변한 걸 보면, 교육 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찌됐건 나는 제법 점잖은 인물이 되었다. 따라서 더이상 어른들도 클레임을 걸지 않는다. 나서야 할 때 나서고 있지만, 계면쩍어 하는 겸손을 첨부하게 되었다. 물론 빠질 때는 빠지고 있고. 이렇게, 나는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물상이 되었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요즈음 벤처를 하면서, 새삼스럽게 나는 '대학생스럽고', '귀여울 것'을 요구 받고 있다. 이런 조언을 던지는 이들에겐 여러 복합적인 의도가 있겠지만, 어찌됐건 그들은 내가 '어린 티를 내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전후좌우를 따져보면, (물론 젊음에 대한 다소 편협한 이해가 없진 않겠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주문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진리와 다른 것일까. 그 동안의 내가 봐왔던 어른들은 갑자기 이 세계에서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진입하는 웹 비즈니스, 혹은 벤처의 세계가 유별난 것일까.

어차피 내가 봐 온 세계도 이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이며, 앞으로 볼 세계도 일부일 뿐이기에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몸은 멍청하다. 물론 나는 필요하면 뭐든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설계했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가끔 엉뚱한 세계에 던져졌다는 부유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아노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듯 하다.


2007년 10월 5일 금요일

내가 사업하면서 잘한 일들을 꼽자면..

Pig-Min 정모에 나간 것. 소프트뱅크 벤처스 미디어랩의 리트머스 에 지원한 것..  정도랄까.

이 경험들의 공통된 부분은 사업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엄청난 힘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예술이든 사업이든, 결국 영원한 딜레마는 사람이다.


2007년 10월 1일 월요일

언론을 잘 타는 멍청한 서비스

대다수의 멍청한 서비스는 언론을 타지도 못한다.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조차 파악치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언론에 계속 노출되는 멍청한 서비스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러니 모두 그들을 욕하기 전에, 일단 감사의 마음가짐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2007년 9월 27일 목요일

강자는 쇼를 하지 않는다.




최근래 사이에 KTF의 '쇼' 프로모션은 어떠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리고 그것은 먹히고 있다. 아이들은 쇼 곱하기 쇼를 외치며 논다. 그게 뭘 뜻하는 지는 모르고 말이다.

쇼는 약자가 한다. 광고 안에서도 그런 구도는 명확하다. 비행기/영화 티켓을 가지지 못했거나, 휴가를 받아야 하는 직장인이거나, 아들에게 용돈을 타야 하는 부모처럼- 말이다. 광고는 그러한 궁상맞음, 혹은 불행을 어처구니 없게도 긍정하라고 강요한다. 남에게 '쇼를 한다'고 타박을 들어도 좋으니 쇼를 하란다. 왜냐면 쇼는 나쁜게 아니니까! 자기연민을 날려버리는 자기 학대가 가져다 주는 쾌감은 어떤 면에선 분명하다. 따라서 쇼의 광고는 계속 멍청한 짓거리들로 채워질 것이 틀림없다(쇼의 광고에 동영상 UCC의 냄새가 아주 짙게 나는 이유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쇼를 벌이는 자가 똑똑하고 현명한 강자라는 것을 시청자들이 깨닫는 순간 시청자들을 만족케 했던 해방감이 사라질 것이므로.

하지만 사실 똑독하고 현명한 강자(연예인을 제외하면)는 애초에 쇼를 하지 않는다. 광고 속의 극장주나, 상사등은 쇼를 할 필요가 없고 실제로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쇼에 대한 진실이다. 결국 쇼는 절대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행복론이 아니다. 땡깡, 아니면 자기 학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광고로 말미암아 쇼를 한다란 말이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바뀐 어휘라 한들 내 자식이 '쇼 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동영상 UCC의 한계란 글에서 말했다 시피, 거기엔 어떤 철학과 영혼도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누군가는) 알아준다는 웹2.0 사이트를 창업한 동영상 속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든 떠 보고 싶어 캠 앞에 선 10대 연예인 지망생 아이들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면 내가 오버하는 걸까? 순박하기까지 한 그들을 욕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만큼 이 바닥이 쉽지 않다는 걸게다. 고상함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그들의 쇼를 탓할 수 있으랴. 다만 약자임을 떳떳해 하는 모습이 난 썩 달갑지 않다.


2007년 9월 18일 화요일

20대 공감 놀이터, 펀키아?

https://www.funkia.kr/

이 사이트의 테마 : 과유불급
이해 할 수 없는 건 이 사이트를 만든 회사가 기아란 사실이다. 젊은 애들 데려다 최근 뜬다는 기능만 죽 모아놓은 모양새가 쾌쾌한 차 샤시에 봄내음 좀 풍겨 보려는 것 같은데, 내게 느껴지는 건 돈 냄새 뿐이다. 허재와 이종범이 다져놓은 내 기아 사랑이 흔들리는 구나..


2007년 9월 16일 일요일

웹서비스에 있어, 디자인은 주인공이 될 수 없는가?

"그 제품이 성공한 건 디자인 때문이야."라는 말은 가끔 듣는다. B&O같은 기업의 제품이 팔리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 그런 것도 같다. 그런데 "그 웹 사이트가 성공한 건 디자인 때문이야" 란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로 가장 성공적인 인터넷 기업인 야후나 구글을 보고 있노라면, 웹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이란 마치 오래된 미신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녕 인터넷 유저들은 디자인이 끝내준다면 다른 요소를 포기할 용의가 없는 걸까?

생각은 있으되, 아직 정리가 잘 안된다.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소년이여 납세자가 되라.

전화가 한 통 왔다. 국민연금 내란 소리. 버는게 한푼이라도 있어야 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지만, 창업을 해서 이익추구 활동을 하는 것이니 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월 7만원을 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 별 거 아닌 돈이라면 별 거 아닌 돈이지만, 돈 없는 휴학생에겐 가볍지 않은 액수이다. 이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고, 이렇게 친정부 성향의 투표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회의주의로 바꾸는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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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국민연금은 세금은 아니다. 다만 돈 뜯기는 기분을 느끼자 정부에 대한 호감이 -10포인트 되는 현상을 시사하고 싶었음.


2007년 9월 9일 일요일

벤처 창업이란..

우리가 입주해 있는 이 건물의 2층에는 약 150~200M 가량 직선으로 이어진 복도가 있다. 때 늦은 장마 이후, 실로 오랜만에 흐드러지게 핀 햇빛이 주말의 어두운 복도 깊숙히 스멀스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일요일의 스산함과는 제법 부조리한 모양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눈을 감고 이 길을 걸으려 했다. 눈을 감은 채 길을 걸으려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물론 대개는 발 걸음을 몇 번도 채 띄지 않아 눈을 뜨고 만다. 이것은 시각이 발달한 생명체로서의 본능이다. 그러나 드물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나 계속 눈을 감고 걸으려는 때가 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그런 경우였다. 장애물도 거의 없이 뻥 뚤린 직선의 길이다. 따스한 햇빛이 인도하는 그 길을 걷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눈을 떠야만 한단 말인가.

하지만 눈을 감고 걷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걸음의 속도가 몰라보게 느려진다. 속도를 내는 만큼 충격도 크기 때문이다. 느릿하게 걸어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드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온 안도감도 금새 휘발되어 버린다. 방향감각이 사라지는 것이다. 세상에, 그냥 쭉 걸어가면 끝일 복도를 걷는데 무슨 방향감각. 그런데 그것이 그렇지가 않다. 내가 그리는 상상의 좌표는 어둠 속에서 흔들거린다. 반면 엉뚱한 것들이 내 머리속을 휘젓기 시작한다. 방금 전 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활성화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청각이었다. 기계가 뿜는 숨소리, 건물 밖 벌레들의 사각거림 따위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만은 그럼에도 들린다. 흔들리는 어둠 속에서 기계와 벌레등이 뛰어다닌다.

이 쯤되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게 된다. 내 바로 앞에 벽이 있을지, 아니면 어이 없는 표정의 경비원이 있을지를 말이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휘젓게 된다. 그렇게 손이 어둠으로 가려진 허공을 베면 공포도 조금은 베인다. 그래서 나는 걸을 수 있다. 방향은 이미 잃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눈을 뜨고 싶은 욕망이 마구 피어 오른다. 나의 목표를 다시 확인하자, 그러면 난 다시 힘차게 걸을 수 있을거야- 라고. 그것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타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았다. 눈을 뜬다는 건, 게임의 룰을 어기는 것이다. 그것은 게임에서 진다는 의미와 다름 없다. 물론 눈을 뜨고 걷는 것이 안전하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그래서 난 무엇을 얻는단 말인가. 주어진 삶에 만족하기 위해 일부러 스크루지와 같은 체험을 할 필요는 단연코 없다.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눈을 감았고, 무언가를 얻지 않는 이상 만족 할 수 없다. 자기합리화를 하느니 애초에 눈을 감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순간 나는 창업이, 이 어리석은 놀이와 지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창업자는 어쩌면 너무나도 손 쉬워 보이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걸어(뛰어)간다. 그러나 불과 몇 걸음도 안가 목표는 암흑 속으로 숨어버리고 별 시덥잖은 것들이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무엇이 시덥잖은 사실이란 건지 알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공포는 그 시덥잖은 사실과 중요한 사실을 섞고 창업자를 흔든다. 똑바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두말할 필요도 없는 해결 방법이다. 그러나 그걸 할 수가 없다. 손을 휘젖다 보면 몸도 휘청, 마음도 휘청 이다. 제법 왔다는 것을 채 느끼기도 전에 눈을 뜨고 싶다는 욕망이 머리 속을 지배한다. 하지만 눈을 뜨면 진다. 그게 게임의 규칙이니까. 창업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충분한 준비물을 갖추고 눈을 감아야 할까? 혹은 눈을 감고 걷는 방법에 익숙해져야 할까? 소리와 빛을 파악해 방향을 유지하는 기술을 익혀야 할까? 글쎄, 어떤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어떻게 준비하 건 특정 시점에선 두렵고 불안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나는 그런 심정으로 오늘도 걸어가고 있다.


2007년 9월 8일 토요일

가늠할 수 없는 꿈의 크기.

드라마 대조영의 캐치 프라이즈. 드라마 자체는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 문구는 예외다.

욕망을 긍정해야 한다. 자신의 밑바닥에서 꿈틀 대는 무언가를 언어화 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 자신과의 악수이다. 악수가 거듭될 수록 그의 발언권이 세지는 걸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굴욕적인 관계라고 생각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것은 당신이니까.


2007년 9월 2일 일요일

벤처는 '우리가 훨씬 낫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구글이 나타나기 이전 '검색'은 흥미로운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다. 영업부터 오만가지 수요에 귀를 기울여야 했던 기존 강자들은, 이 괴짜스런 기술에 눈을 두지 않았다. 이는 덩치 큰 조직이 맞이하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지만 대개 그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선 괴짜스러운 (다수의 단점을 포함한) 특정한 장점보다는 익숙하고 전반적으로 원만하고 익숙한 기존 기술을 택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치 마켓의 요구가 순식간에 메이저 트랜드로 치고 올라올 수 있다는 점에서, 웹은 기존의 어떤 경제 생태계보다 흥미롭다. 순식간에 패권이 뒤집혀 온 웹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지금도 음지에서 한정된 영역에 대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꿈꿔 온 벤처들을 위한 찬송가처럼 들린다.

그러나 많은 벤처들이 이따금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웹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를 트랜드로 승천시킬 수 있는 여의주와도 같지만, 그 여의주를 부라퀴로부터 빼앗어 움켜쥘 수 있는 능력은 결국 힘이라는 것이다. 구글이, 네이버가, 그리고 수 많은 웹 서비스가 성공한 것은 그들의 아이디어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자, 전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왜 성공했느냐고? 답은 단순하다. 그 서비스가 더 뛰어났다는 것. 구글의 검색은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하던 야후보다 훨씬 뛰어났다. 네이버의 지식IN은 상세한 정보의 제공에 있어 다른 무엇보다 훨씬 뛰어났다. 트렌드를 잘 읽고 예측하는 일도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어찌됐건 그 분야에 있어선 분명히 뛰어났다, 그러니까 성공했다- 이것이야 말로 본질인 것이다.

한국은 왜 웹 2.0 서비스가 별 볼일 없는지에 대한 포스팅을 보았다. 다양한 이유가 사용자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본질적 이유를 정리 하면 결국 하나의 사실로 수렴한다. 한국의 웹 2.0 서비스업자란 자들이 기존의 강자들보다 우수한 서비스를 만들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 말이다. 올블로그는 다음 블로거 기자단보다 우수한가? 태터툴즈는 네이버 블로그보다 우수한가? 위자드닷컴은 포탈보다 우수한가? 특정한 비교우위가 있다는 건 알겠지만, 결국 포괄적으론 '글쎄'라는 대답이 나온다. 토끼가 사자보다 빠르다 해서 사자를 잡아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결정적인 능력의 차이는 사소한 장점을 압도한다. 생존(일정량의 쉐어를 차지)하는 것 까지는 해낼지 모른다. 그러나 한정된 좁은 울타리(한국 웹) 안 에서 뛰어 봤자다. 지배적인 강자가 되려면, 속도 만으론 부족하다. 신선함도 파격성도 힘에 의해 가치를 얻는다는 점을 주지한다면, 토끼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재즈잭래빗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웹 2.0 토끼 중엔 그렇게 힘있는 서비스가 눈에 띄질 않는다.

나는 이런 무기력함의 기저에, 펀딩 환경의 미비가 아주 강력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할 지언데, 제대로 돈을 못 투자 받으니 그저 그런 인재로 해 나갈 도리밖에 없다. 반면 우수한 인재를 그대로 손에 쥔 포탈. 스스로 자멸하지 않는 이상, 포탈이 승리하는 건 굳이 한국 유저의 취향이니 포탈 권력따위를 언급하지 않아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의 능력을 놓고 "우리가 구글보다 인물 검색에선 훨씬 낫다" 라고 말하는 정도의 포스가 없다면, 그 벤처의 미래는 험난할 것이다. 설령 지금 잘 나가고 있다 해도 말이다.  

비즈니스적인 의미가 필요하지 않다면, 단지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개척하고, 이어지는 경쟁에서 끝내 이기고 올라올 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정말로 어려워 보인다. 이 세상에 무언가 기여 한다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는 시도만으로도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으려는 승자들의 논리는 분명한 힘이다. 나는 판도라TV도 싸이월드도 메가스터디도 다 박살내 버리고 싶다. 암수와 음모가 아닌 순수한 능력의 차이로 말이다. 그것은 실로 어려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결국 분명히 성공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2007년 8월 27일 월요일

한국 웹을 발전 시킬 수 있는 정치적 결단

1. 통일, 혹은 북한의 개방화
2. 조선족에 대한 지원
3. 장년,노년층에 대한 컴퓨터 교육 확대

한 마디로 '한국어'를 쓰는 소비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을 초월하리라 기대했던 웹은, 오히려 굴뚝 산업들 보다 로컬 문화에 얽매여있으며, 결국 그것이 한국 웹에 포괄적인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만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훌륭한 지도자의 조건임은 틀림없다.

아, 물론
4. 인터넷에 극도로 특화된 매운 단순한 기기 개발 지원
같은 건 기업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ActiveX 로 범벅이 된 한국 웹이다. 윈도우 종속적인 기기는 결국 그냥 현재의 PC의 아종일 뿐이다. 과연 길이 있을까..


2007년 8월 22일 수요일

창의력을 키우고 싶다면 예술을 즐겨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예술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창의력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예술은, 창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양식이다. 글로 표현하면 문학이 되고, 소리로 표현하면 음악, 색과 형태로 표현하면 미술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그 표현의 성립이다. 예컨대 '내 마음은 호수'라는 예시를 돌이켜 보면, 작자의 마음이라는 복잡미묘한 무언가가 '호수'라는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알 수 없는 것을, 표현자와 수용자가 다 아는 것으로 전환시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한다. 그것이 예술의 성립이다.

따라서 예술적 사고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물들 간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능력이며, 그것은 수많은 지구 위의 일상다반사를 지점토로 만드는 마법이라 할 수 있다(표현력은 논외로 하겠다). 이 마법은 예술 안에서만 머무르는 환상이 아니다. 케쿨레는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도는 영상을 꿈 속에서 보고, 그것을 벤젠의 구조식으로 바꾸었다. 이것이 예술적 사고, 다시 말해 창의력이 아니겠는가?

물론 위대한 창의력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 중에는, 정말 그럴 만한 것들이 있다. 세상엔 아무 단서도 없이 던져진 퍼즐들이 종종 있다. 그것이 퍼즐임을 인식하는 것 조차 힘든, 그런 퍼즐들 말이다. 고독이야 천만 솔로부대의 슬로건이지만, 그걸 지독한 광기의 화폭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은 고흐 뿐이다. 이런 퍼즐들을 해결하는 것은 천재들의 영역이며, 혹은 신의 영역이다. 우리는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창의력을 가지면 된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창의력은 대개 그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능력은 얻기도 쉽지 않지만, 가지고 있어도 관리가 쉽지 않다. 어느 정도의 능력만 있어도, 우리는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이유있는 구성원이 될 수 있다. 그 정도의 창의력이라면 얻는게 그리 힘들지만도 않다.

마음이야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호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저 표현을 안다. 왜? 배웠으니까. 교과서를 읽었으니까.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으니까. 배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한다. 비교적 비 논리적인 형태로 전개되며 기본 지식이 제법 많이 필요한 미술과 음악보다는 나는 문학을 권하겠다. 내 마음은 호수라고 마른 하늘에 소리 질러 보자. 그 다음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왜 mind == lake 인지, 그래서 어쨌다는 건지 진지하게! 진지함은 당신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고, 그 자신감이 때로 유령 처럼 튀어나오는 실체 없는 아이디어에 뼈를 붙이는 작업을 할 것이다. 당신이 이런 과정을 즐기고, 일상적으로 반복한다면 당신에게 수천만 달러짜리 창의력이 생겨날 것이다. 뭐, 정 안되면 국어 선생이라도 하고.


2007년 8월 20일 월요일

골수 엠파스 유저인 나에게

싸이월드 + 엠파스 조합은 강력하다.
일년 전에 접은 싸이월드, 쓰고 싶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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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 사이트를 왜 네이버로 잡는가? 내가 네이버 사이트 등록했다고 내게 이러면 안되지?


2007년 8월 13일 월요일

책 추천, '협상의 기술'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다. 간만에 대단히 만족하면서 말이다. 직관적이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협상에 대해 언급하는 이 책은, 그간 협상이란 것에 사람들이 가져왔던 환상과 비도덕적 기대를 제거하고 올바르면서도 분명한 협상의 방법론을 설득력있게 설파한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정말 잘 쓴 책. 인간은 죽음을 제외하고는 모두 협상을 하며 살아간다는 작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협상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협상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읽어보시기 바람.

덧.

 

미국 드라마 덱스터의 원작 소설을 최근 샀다.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주인공이 연쇄살인범이며, 또 다른 연쇄살인범을 쫒는다)인 만큼 자극적인 재미는 분명하다. 드라마의 감각적 영상은 엿보기 힘들지만, 그 대신 위트 넘치는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것이 제법 재밌다. 다만 이 책을 산 목적(2기 내용이 궁금해)은 달성하지 못해 아쉽다. 제길 누가 2기 내용이 소설 2편 내용이래 버럭.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비즈니스맨을 위해 태어난 블랙잭폰(한국명 울트라 메시징)

이라는 표어에 낚여 질렀다. 이런거 산다고 뛰어난 비즈니스 맨 되는건 아닐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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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껏 스마트폰을 쓴 바가 없어 객관적인 평가는 내리기 힘들겠지만, 일단 대 만족. 자판도 누를 만 하고, 사운드나 디스플레이등 어디 하나 눈에 거슬리는 바가 없다. 내적으로도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 오페라 브라우저로 이 사이트를 접속해 보고 혼자 감동에 떨었다. 원래 손으로 뭔가 만지작 거리는 습관이 없음에도, 이 폰은 자꾸 손이 간다. 양파링도 아닌데 말이다 흐흐. 여지껏 샀던 휴대폰 중 가장 즐겁게 쓸 것 같은 예감이다.

기기 리뷰같은 건 소질 없으니 Skip.


2007년 8월 8일 수요일

Fly me to the Eva..

본디 독야청정한 나는 무언가에 깊이 빠지는 일이 드물다. 다양한 흥미사를 폭넓게 접하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무언가에 집착하진 않는다. 때문에 좋아하는 대상들조차 객관적 잣대를 잃지 않고 대해, 그 본연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천성적 반 오타쿠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랬던 나 조차 깊이 심취해 허우적댄 대상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에반게리온이요, 둘은 임요환이라. 초호기의 포효가 꿈결 너머로 사라져 갈 무렵 황제는 찬란했다. 그랬던 임요환이 현재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S2기관 섭취중이시이고, 사라졌던 에바는 우타다 히카루의 소울로 덮여 돌아왔다. 신지 육성계획까지 샀던 나에게 뭘 더 팔려는 거냐 엉?


이리 : "이런 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신지 : "지르는게 좋다고 생각해."
이리 : "...."


2007년 8월 6일 월요일

승리의 Adobe

백만원짜리 포토샵 C3에 이어, 플랙스 2 빌더 라이센스 2개까지..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얼추 구입을 완료했다.
덕분에 회사 자본금의 1/10을 소진..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2007년 8월 3일 금요일

주인장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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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EEYOU Co., Ltd 대표이사 '이리'

얼굴을 심슨화 시켜주는 Simpsonize Me 의 작품입니다. 흐흐


2007년 7월 31일 화요일

자유연상. 중소규모 커뮤니티의 중요성과 포탈의 대처

블로그코리아 리퍼러,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세계일보 서명덕 기자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로서, 자신의 사이트에 블로그 코리아로부터 유입된 인원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놀란 것은 바로 블로그 코리아 아래에 69명이 들어온 것으로 되어있는 eye.icu.ac.kr란 주소. 여기는 ICU의 학생 커뮤니티 EYE로,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 유입은, 내가 리플에 링크한 글 때문으로 사료된다.
ICU 학생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사실 EYE는 그리 큰 커뮤니티가 아니다. 하루 순 방문자 (낮은)수백명정도의 규모. 그럼에도 블로그 코리아에 버금가는(?) 유입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경험은 비단 이번 뿐이 아니다. 그간 나는 동영상 UCC들에 들어가 있는 "어디서 봤을까?" 기능을 살펴보면서, 의외로 내가 퍼트린 경로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그 동영상을 시청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 포탈 메인에라도 글이 뜨지 않는 이상은 다 이런식이 아닐까? 의외로 컨텐츠로 사람을 유입시키는 캐쉬카우는  중소규모의 커뮤니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땅한 통계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생각외로 사람들은 검색엔진 만큼이나 '자신이 다니는 동네'에서 상당한 정보를 얻는다. 더욱 의미가 있는건,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매우 신뢰한다는 점이다. 몇번 인터넷을 뒤집었던 괴담이 퍼져 나간 상황을 살펴보면, 중소 규모사이트가 막강한 확성기로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곳엔 알바가 안 온다고 생각하는 걸까?
포탈은 온갖 화려한 컨텐츠를 포장해 사람들을 머물게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관계- 타인들과의 어울림을 직관적으로 제공하지는 못한다. 때문에 중소 규모 커뮤니티는 가치를 부여받는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이용은 인터넷을 깊게 쓰는 사람일 수록 그 정도가 더하다. 인터넷 좀 한다라는 사람은, 자주 다니는 커뮤니티 한둘쯤은 있는 경우가 흔하니까(물론 싸이월드의 등장 이후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게 됐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야 말로 인터넷에서 다양한 변화를 주도하는 '우수 고객'이란 사실이다. 인터넷의 진수- 인간관계를 잘 느꼈기에, 그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고, 그를 이용하는 활동을 한다. 컨텐츠 생산 말이다. 반면 뉴스나 보고, 피자집 전화번호나 찾으려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내 주변인만 살펴봐도, 그런 얕은 유저는 인터넷에서 뭔가 할 생각 자체를 하질 않는다. 웹 2.0도 그들에겐 공허한 표어일 뿐이다. 서비스 프로바이더가 누굴 붙잡아야 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는다.

인터넷이 단지 정보(데이터)의 바다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중소 규모사이트는 더욱 그 가치를 얻을 것이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인터넷의 미래라는 접근은, 그런 전제를 깔고 있다. 포탈은 카페라는 형태로 이런 NEED를 만족시키려 한다. 물론 타당한 접근이다. 그러나 몇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다.

1. 사이트로의 접근성.
로그인 해서 들어가는거 아무래도 귀찮다. 스타크래프트가 최고의 취미인 내가, 임요환 팬카페에서 PGR로 옮겨탄 이유의 7할은 이 것 때문. 꼭 로그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별도 도메인 부여나, 검색에서의 노출등 보다 발전시킬 여지는 있으리라.
2. 데이터로의 접근성.
필요한 컨텐츠는 물론, 그 카페의 분위기조차 가입해야만 볼 수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내가 원하는 컨텐츠가 빈약한, 이른바 별거 없는 커뮤니티면 양반이다. 가입해 놓고 보니 망한지 오래고 광고글만 판치는 사이트였던 경우가 부지기수.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를 찾기가 불편하다.
3. 디자인의 자유로움.
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전문가적 역량을 지닌 하드코어 유저는 카페 형태의 커뮤니티를 별로 안 좋아하더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블로그를 안하고 계속 홈페이지 예찬을 펼쳤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른바 '내맘대로 안된다'는 점 말이다. 여기는 다음의 영토다, 여기는 네이버의 영토다 식의 강조만 숨겨도 더 많은 사용자가 생기지 않을런지.

결론. 중소규모 커뮤니티는 쫌 중요하다. 그 이유는 쫌 뛰어난 애들이 중소규모사이트에 많기 때문. 포탈의 카페는 그런 중소규모사이트에 대한 NEED를 만족시키기엔 왠지 쫌 부족하다. 쫌만 더 잘해봐라.



..뭐 알아서 잘하겠지. 뒹굴

덧.
사실 첫번째 문단까지만 생각하고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쓰다 보니 이상한 전개로 빠져버렸다. 덕분에 내용이 중구난방인데, 이해 해주시길.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UCC라고 동영상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http://www.zeb.co.kr/
http://www.mo23.co.kr/

일반 사용자가 3D영상 혹은 입체 영상으로 UCC를 제작해 봐야 얼마나 하겠느냐는게 문제다. 물론 이들은 유튜브를 꿈꾸기 보단, na4 처럼 제휴나 프로그램 라이센스등의 수익모델을 궁구하고 있을테고 그래서 마케팅에도 별로 신경을 덜 쓰는 모양이지만- 그를 감안해도 저러한 참여도는 보기 안쓰러울 따름이다. 쓰이지 않는 기능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필요없는 기능이라는 걸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기존에 없던(혹은 부족하던) UCC를 다룬다. 그것이 진정 고객에게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예측과 억측의 사이에서 희망과 불안을 저글링할 뿐이다.


2007년 7월 25일 수요일

주제가 없는 블로그라 그런가

쓸 거리가 없다..
이대로면 블로그가 망하는데 으어

덧.
사실 최근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2007년 7월 14일 토요일

보통 창업자들에게..

가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라고 답한다 한다. 창업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상, 준비 기간이란 상상 속의 그대(=성공)와 랑데뷰 중인 시간일 확률이 높다. 불안보다는 희망이 우세한 시기기에 힘들어도 기쁠 수 밖에. 그러나 현실이 찾아오면, 곧 그 형세는 역전되기 십상이다.

어제 입주하기로 한 창업보육센터內 사무실을 정리하고 꾸몄다. 힘들어도 즐겁다. 하지만 곧 이 작은 방에도 현실이란 녀석이 들이닥치겠지.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한 벤쳐지만, 최소한 마지막까지 즐겁게 지내고 싶다. 물론 그 때 돈 더미도 안고 있으면 금상첨화.


2007년 7월 8일 일요일

해괴한 시계

UNIQLOCK

옷 프로모션용 위젯인 모양인데.. 블로그등에 시계로 삽입할 수 있다. 블로깅 하다 본게 벌서 네 번째니 효과는 나름대로 쓸만할 듯 하다. 앰네스티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담당 디렉터인 스티브 다이그널트가 “사람은 자신의 페이지에 액세서리를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매우 쿨하고 개성이 있으며 매우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는데 이 시계가 딱 그 경우인듯 하다.

제가 하려는 웹서비스는 이런 종류의 것들을 만들게 도와주는 물건입니다.


2007년 7월 5일 목요일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데이터의 미래는 관계다. 근데 사실.. 관계도 데이터가 될 수 있다.

내가 비록 데이터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라는 식으로 포스팅을 하긴 했으나, 사실 웹의 변화를 이끌어온 것은 대게 데이터이다. 텍스트 → 이미지 → 음향(MP3) → 동영상 순으로 이어진 데이터의 고도화가 얼마나 다양한 웹 서비스의 출현과 퇴장으로 이어졌는가. 관계를 상징하는 SNS들도 이런 고도화된 데이터를 메타데이터나 유통성 등의 장치로 포장하여 자사 트래픽을 발생시키고, 다시 그 힘을 데이터의 재생산으로 순환시키며 발전했다. 결국 관계는 데이터를 확보한 이후의 문제였다. 그것이 은근한 장점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Facebook은 소셜OS입니다.

그러나 이제 관계의 반격이 시작되는 듯 하다. 그 자신이 데이터가 되어, 새로운 변화를 끌어내려 한다. 그 선봉에 페이스북이 있다. 막강한 관계 데이터를 일촌only 란 명목으로 말아 먹은 싸이월드와 대비되는 측면이다.
개인적으로 일촌공개 사진과 비밀 방명록만 즐비한 싸이월드의 미래가 썩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사람들이 왜 싸이월드를 시작 했다고 생각하는가. 단지 원래 친했던 사람들과 시시덕 거리는 용도라면, 굳이 싸이월드가 아니어도 상관 없는데 말이다. 사생활 침해등의 이슈로부터 발생한 사회적 비판등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많았겠지만, 그런 외압에 순응해 가는 동안 왕창 벌어놓은 돈으로 한 게 고작해야 홈2나 메일, 지지부진한 해외 진출등이란게 문제다. 이미 한국 마켓을 독점한 싸이월드의 성장에 제동이 걸릴 것임은 예고된 바 아니었나. 그렇다면 새로운 서비스로의 변신을 준비 하던지, 아직 미 개척지인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던지 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론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다. 나우콤이 나우누리로 돈 버는데 정신 없다가 초기 인터넷 붐의 주도권을 완전히 놓쳤듯- 돈을 가장 잘 벌때가 가장 미래를 걱정해야 할 때임을 싸이월드는 몰랐던 모양이다.

물론 싸이월드는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혹 싸이월드가 지금의 명성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일촌으로 흥한자, 일촌으로 망했다- 고.


2007년 7월 4일 수요일

사무실 컴퓨터 사양

CPU AMD 애슬론64-x2 브리즈번 3600+ AM2      60,000            1      60,000
RAM E5MEMORY EK DDR2 1G PC2-6400 레드 PC2-6400      43,000            1      43,000
Main ASUS M2N8-VMX 디지탈그린텍 Micro-ATX
AM2
PC2-6400
SATA2
E-IDE
D-SUB
     56,000            1      56,000
VGA - -               -             -              -
HDD WD SATA2 160G (7200/8M) WD1600JS 정품  SATA2      44,000            1      44,000
ODD 삼성 COMBO SH-M522C/KVAF 정품벌크 E-IDE      22,000            1      22,000
Case GMC H70 풍II 블랙 ATX
M-ATX
     51,000            1      51,000
Power 스카이디지탈 파워스테이션2 PS2-400NF2 ATX      46,000            1      46,000
LCD 파워뷰 PV-170EX D-SUB
DVI
    142,000            1    142,000
합계    464,000



팀원 중 한명에게 사무실에서 쓸 컴퓨터 견적 뽑아 보라 했더니 이렇게 뽑았다.
백만원 가량 주고 486 세진 컴퓨터 샀던 시절이 생각난다..


2007년 7월 2일 월요일

미국인들은 왜 창조적일까?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이 된지는 오래되었지만, 최소한 아직도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다. 그 이유는 수 많은 특허와 첨단 기초과학이 다져 놓은 저변에 있다. 어떤 제품, 어떤 기술로 세상을 바꾸려건 간에 그 근본 원리는 미국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라이센스 비용같은 직접적 요인을 제하더라도, 뭘 할려고 하건 미국을 거쳐야 하는 구조는 엄청난 힘이다. 냉전 팔아 때돈 벌었던 스위스처럼, 진정한 승자란 구질구질하지 않은 법이다.

어떻게 미국인들은 그렇게 훌륭한 저변을 갖추게 되었을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건국 이래 뛰어나고 능력있는 외국인을 자국민으로 받아들인 제도이다. 우수한 대학들이 전 세계의 영재들을 가르치고, 실리콘 밸리는 전 세계의 기린아들을 끌어 모은다. 대영제국이 카피레프트로 보급해 놓은 영어도 이 유입을 가속시켰다. 결국 아메리칸 드림은 이민자만의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우수한 사람은 우수한 일을 이루는 법이니까. 그러나 단지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 놓았다는 것이 대단한 창조력의 개발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건 한국 대학들을 유심히 지켜보면 알 수 있다.
그럼 미국은 어떻게? 내가 볼 때, 미국의 창조성은 다양한 문화권, 다양한 사고방식이 서로의 사고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생물학적으로 설명 하자면, 다양한 개체가 만들어 내는 무한한 진화의 가능성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넓게 분포하는 생물(예컨대 바퀴벌레 같은)들은 어떻게 그리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가? 그들 자신이 우수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넓게 살면서 다양한 장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자연계에선 잡종일 수록 강한 법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그렇게 큰 나라 아닌가.

한 가지 더. 미국은 어려서 부터 용돈도 자기가 벌게 하고,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보다 보면 못과 판자로 개집이나 헛간을 만들고, 페인트 칠 따위를 하는 광경이 종종 나오는데 한국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장면. 미국인들이 서바이빙을 더 잘할거란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요는 그들은 어려서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주입십 교육은 어떤 문제에 대한 정답을 강요한다. 때문에 그 정답을 도출하는 '공식'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창조성, 창의성에서 중요한 건 기존의 공식을 벗어나는 독자적인 사고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직접 해결하는 것이 익숙한 미국인이 그런 사고가 발달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닐런지.

...물론 근거는 없다.


2007년 6월 30일 토요일

관계는 데이터의 미래다.

UCC 동영상 서비스 업체에 대한 생각.

웹을 돌아다니다 보면, 일부 블로거의 놀라운 분석력에 놀랄 때가 있다. 특히 이 블로거가 지적하고 있는 2번의 문제는, 내가 꾸준히 주목해 왔던 사항이었기에 반갑기까지 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영상은 당장 웹사이트에 트래픽을 몰아다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웹사이트가 그런 영상 위주로 돌아가게 되면, 평범하고 별볼일 없는 영상은 저변을 잃게 된다. 그 대신 자극적이고, 내용이 없는 영상이 메인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동영상 UCC라는 유행이 끝났을 때, 그 자극적인 풍미는 일순 싸구려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오래 인기를 얻는 음식은 그윽한 것이 많다(앞서의 포스트에선 난 이것을 '스토리의 유무'로 표현한 바 있다). 이것이, 동영상 UCC업체들이 순수한 의미의 홈비디오를 보다 중시해야할 이유다. 어차피 유명한 화제의 영상은 어느 UCC사이트를 가나 다 올라와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킬러 컨텐츠는 홈비디오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블로거가 마저 지적하지 못한 사항은,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느냐는 것이다. 단지 기업들이 트래픽에 눈이 멀어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동영상이란 미디어 자체의 특성에 있다. 동영상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감각(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매체이다. 인간은 이런 자극 앞에 쉽게 피곤해 지기에, 본능적으로 오랫동안 주목하기 힘들다. 30초 안에 시청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사람들이 페이지를 옮기는 건 그런 이유이다. 30초안에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 컨텐츠란 대게 선정적인 컨텐츠이다. 미모의 여성이든, 늘씬한 몸매이든, 얻어맞는 사람이든 간에 말이다. 극한 자극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그 극한 구조를 무리하게 마무리짓는다. 이 때문에 흥분은 남지만, 스토리가 유실된다. 홈비디오는 이런 웹 동영상 매체의 특성에 썩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구조, 이른바 시스템에 있다.

홈비디오를 업로드할 사람들이 어떤 심리에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단지 보관이 필요했다면, 하드디스크도 있고 웹하드도 있고 CD-R도 있다. 무엇하러 조악한 화질로 변신하는, 혹여 악플에 고생할지도 모르는 UCC사이트에 홈비디오를 올리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바로 소통하고 싶어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웹이란 공간은 그런 소통을 전제한 공간이고, 웹상의 데이터는 모두 그런 목적을 지니고 있다. UCC라고 이름붙여지는 데이터는 특히 그런 특성을 필요로 한다. 전문적이지도 않고, 대단할 것도 없는 그런 데이터가 웹에 올라와야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오로지 업로더의 소통 욕구 뿐이다. 나는 이 소통에 대한 욕구를 '관계'라고 부르겠다.
문제는 다소 귀여운 아이가 뛰노는 영상이나,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그냥 일반인일 뿐인 배우자의 폼 재기따위를 업로드하는 행위가 그들에게 충분한 '관계'를 제공하겠냐는 것이다. 글쎄, 힘들지 않을까. 이효리나 문근영이라면 모를까,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이 시시덕 거리는 영상에 나는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피차 바쁜 몸이니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한 말에는 힌트가 숨어있다. 반대로 생각해 볼까? 상관없는 자들의 데이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나랑 상관 있는 사람이라면 그 데이터에 관계를 맺을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는 의미다! 어디서 줏어 온건지 모를 진부한 사랑타령 싯구도, 친구의 미니홈피에 적혀있을 땐 읽게 된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데이터의 가치는 꼭 그 자신에게 있지만은 않다. 그것이 학교 급우이건, 펜팔친구이건, 눈여겨 본 카페회원이건, 그냥 눈에 띄는 아이디이건 간에- 관계를 기반으로 해 데이터는 재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홈비디오와 관계를 맺을 사람이란 홈비디오의 작성자와 관계가 있는 자들이다. 홈비디오의 업로드를 장려한다는 의미는, 그들이 웹사이트에서 인간관계를- 결국 그 진부한 단어인 "소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는 의미와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동영상 UCC업체는 소셜 네트워크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가? 내가 보기엔, 자신들이 뉴 미디어인양 굴 뿐이다. 관계는 없고, 데이터만 온갖 방법으로 끌어 모은다. 마치 공중파 방송국이 시청률 경쟁을 하듯이. 그러나 그들은 실수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야 말로 데이터의 미래이다. 어째서 몇년전에도 있던 동영상이란 미디어가 새삼스래 '대세'가 된 건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생각하기 힘들면 나름의 답을 내리고 대박도 친 유튜브라도 꼼꼼히 살펴봐라. 페이지 뷰, 업로드된 영상 숫자, 팔린 가격 뭐 이런것만 말고.



하긴.. 판도라TV나 나우콤등 동영상 UCC업체들의 기사, CEO의 강연 자료등을 종합해 살펴보면 이들은 "미래엔 동영상이 대세가 될거야" 이상도 이하도 아닌 판단이 있었을 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겠다. 쩝..


2007년 6월 28일 목요일

은근한 장점의 장점

세상 모든 것엔 관성이 존재하는지라 이성을 유혹하건, 잠자는 사람을 깨우건 그 것에는 강한 자극이 필요한 법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것은 여간해선 쉬운게 아니다. 강력한 장점이 없다면, 고객들은 눈길도 잘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확보한 고객을 묶어두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관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법은, 억지로 그 상태를 유지할려고 애쓰기 보다- 자연스럽게 보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한 장점 보단 은근한 장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은근한 장점은 경쟁자로부터 잘 견제받지 않는다. 그것은 시장조사등의 데이터에 잘 드러나지도 않으며, 합리적 추론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자리에 위치한다. 그 장점을 지닌 회사 자신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설령 겨우 경쟁사의 은근한 장점을 파악했다 해도 문제는 만만치 않다. 은근한 장점은 단순히 돈을 투입해 달성되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은근한 장점은 대게 의도적이지 않게 파생된 경우가 많으며(예컨대 사용자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있다던지), 문화적인 형태인 경우가 많아 인위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자, 이제는 반대로 생각해 보자. 비록 강력한 장점을 지닌 서비스더라도 은근한 장점이 없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강력한 장점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곧 경쟁사들에 의해 견제당하기 때문이다. 그 경쟁사가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경우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공격적인 마케팅, 뛰어난 개발력등으로 무장한 거인과 힘싸움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판도라 TV가 순식간에 다음 TV팟에 밀려버린 것에는, 은근한 장점을 충분히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미래가 다음 팟플레이어 앞에 풍전등화처럼 보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쯤되면 은근한 장점, 그게 대체 뭔데? 라고 소리치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아마, 사람(사실은 일부 아날리스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소셜 네트워킹의 궁극이 그런 형태가 아닐런지.


2007년 6월 25일 월요일

모순

주식회사 설립을 하려니 사업장 계약서류가 필요하다.
창업보육센터에 들어가려 입주 신청서를 쓰자니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

....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년 6월 20일 수요일

세상에 이런 일이..

신속과 효율의 21세기에 있으리라 믿기 힘든 일이지만, 방금 겪은 일이다.

(1)다수가 설문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2)소수가 설문조사가 불필요하다고 했으며
(3)일부는 현재 사람들이 설문조사에 합리적 판단을 내릴만한 충분한 정보가 없어 설문조사는 위험이 있다고 함

그러나 다수가 설문조사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하고, 했던 말 또하고 했던 말 또하는 상황의 반복
그러다 시간이 2시간 가까이 지연되자 이제 거수를 해서 결정을 내리자는 의견이 제시
그러나 설문조사를 할지 말지를 홀에 모인 인원만으로 결정하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이 제시
그리하여 설문조사를 할지 말지를 설문조사 하자는 의견이 제시

결국 양자택일(설문조사를 위한 전체 대상의 설문조사를 할지, 설문조사를 위한 참여자의 거수 조사를 할지)의 상황에서 거수를 하기로 함.
즉 설문조사를 할지 말지를 정하기 위한 거수를 할지 말지를 정하기 위한 거수를 하기로 함.
그리하여 설문조사를 거수로 결정하지 말고 설문조사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2명 더 많이 나옴

결론적으로 설문조사를 할지 말지를 설문조사 하기로 함.

.......


2007년 6월 18일 월요일

일본 사람들은 서사성이 좋은 듯 하다.

일본 2ch VIP 게시판 유머 블로그

2ch에서 노닥거리는 네티즌도 저러 하거늘.. 하긴 소설 GO를 보면 양아치도 세익스피어를 읽는 게 일본이다. 문장력과 서사를 구성하는 힘은 많은 독서에서 오는 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2007년 6월 16일 토요일

따르릉~ 아프리카(Afreeca)TV여 비켜나세요..

다음(Daum)이 나가십니다.

다음, 생중계 및 실시간 개인방송 가능한 '라이브 팟' 오픈

사실상 다음이 아프리카TV와 곰TV에게 동시 침공을 시도하고 있는 형국.

곰TV야 그간 확보한 컨텐츠도 많고, 워낙 곰플레이어 보급률이 좋으며, CJ와의 연계등 제법 믿을 구석이 있지만.. 아프리카TV는 뭘로 승부 할텐가?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보러 다운로드 받은 팟 플레이어.. 개인방송을 보는데 그 화질이 무시무시하다.. 직접 보시면 알텐데, 이건 거의 경악의 수준이다.. 200kbps도 아니고 무려 2000kbps 란다... 뭐야 이거.. 무서워..


2007년 6월 14일 목요일

구라를 잘 치는 한국소설이 고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건 문학에서 큰 의미가 없다.


1.
선정적인 제목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우린 어려서부터 '진실되게 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최소한 구라가 미덕인 직업도 있다. 적절한 거짓말은, 진실을 보다 풍성하게 한다. 선의의 거짓말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문학성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다.

사실, 난 자기기만이 아닌 한은 거짓말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무한소의 협소한 특정 영역이고, 거짓은 그 여집합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물론이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가 합의한 애매함일 뿐 그것이 지시하는 진정한 본체는 아니다. 언어가 몸짓이나 그림, 기타의 것으로 바뀐다 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인류보완계획이라도 실시하지 않는 한, 거짓은 공기와 같은 것이다.

너무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로 빠진 것 같은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간단하다. 내가 말하는 거짓이란, 재산신고를 29만원으로 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거다. 제목에서 언급한 구라는 용이하게 작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구라이다. 언어가 메신저라면, 구라는 폰트와도 같다.


2.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등을 보고 있다 보면 감탄할 때가 있다. "참 잘도 가져다 붙였네"라고 말이다. 부정적 어투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것은 칭찬이다. 만화왕국에서 자라서 인지는 몰라도, 그네들은 참 별별 종류의 소재들을 내용에 '가져다 붙인'다. 그것은 과학이기도 하고, 미학이기도 하며, 철학이기도 하다. 벌레 같은 존재가 된 주인공을 통해 불황 이전의 일본 남성 라이프스타일이 시체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표현하려 했다는 등의 말(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 무라카미 류)을 보고 있으면 독자로선 재미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적인 유희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여러 모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흥미란게 중요하다. 경영학도라서 그런지 몰라도, 제대로 된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질의 재화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새로운 시장을 형성시킴에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일까? 마케팅 아닌가. 상품에 흥미거리가 많다는 건, 마케팅 당담자에겐 천군만마와도 같은 일이다.

한국 문학이 죽었다는 말이 들린 건 제법 오래된 일이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볼 땐 소득 수준에 비할 때, 한국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히 정치인이 국민을 탓할 수 없듯이, 어찌 생산자가 소비자를 탓할 수 있으랴. 어찌됐건 '팔리는 소설'을 발굴해야 할 책임은 생산자에게 있다.


3.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구라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것은 29만원이 아니라, 미노프스키 입자와 같은 것이다. 소재에 매몰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설이 현실의 알레고리를 포기하는 순간 그것은 저열한 판타지 소설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소설이 소재의 다양성을 포기해야 할 근거가 되진 않는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이고, 그 허구가 바로 구라이다. 이왕 치는 구라, 좀 풍성하게도 치면 안될까? 스토리 텔링 제대로 하자는 거다.

한국 작가들은 구라는 자제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아니면 구라를 칠 상상력이 없거나. 혹 멀쩡한 인간이 벌레가 되는 등의 구라에는 독자들이 안 속아줄거라고 믿는 걸까? 글 재주는 빼어나지만 자극적 소재로 어찌저찌 장난이나 칠 줄 아는 저열한 작가일지도 모를 무라카미 류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다면 카프카도 저열한 작가인가? 카프카를 감히 무라카미 류와 같은 위치에 놓으려는 게 아니다. 소재는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사실 나는 '구라가 적고', '포장이 적은' 문학이 싫은 소비자는 아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이우혁도, 김진명도, 원태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나 같은 올드 패션 소비자는 거의 없다. 그들은 핸드폰 문자에 "밥먹었니" 라거나 "만나자"라거나 "안녕" 이라고만 쓰면 삐지는 세대이다. 그들에게 문자를 보낼 땐, 다소 미식거리더라도 "ㅋ"나 "ㅎ"나 "+_+" 따위의 이모티콘을 붙여줘야 한다. 그것이 파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소통이고, 그래서 창조이다. 귀여니의 소설을 파괴라고 생각하지 말라. 팔리는 소설엔 다 이유가 있다. 스토리 텔링은 정말 중요한, 그러나 은근히 무시되는 기술이다. 나는 여지껏 스토리 텔링이 되지 않는데도 히트 한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창천항로를 보면, 막강한 군세와 유능한 부하들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땅에 틀어 밖혀 세상을 관망만 하는 유표를 일컳어 제갈량이 "천하와 성교해보지도 않고 (학문이란 수단을 통해)혼자 자위하며 만족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한국 작가는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뉴스 제목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스즈미야 하루히 같은 소설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김언수의 캐비닛 정도의 글은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2007년 6월 11일 월요일

ZDNet Korea 홈페이지

ZDNET Korea

개인적으로 애용하는 IT 뉴스사이트. 내용의 질에 있어서 이 만한 사이트도 찾기 힘들다. IT 벤처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조언, 정보를 얻는 사이트랄까. 벌써 반년이 넘게 모든 기사를 다 읽고 있는데(물론 프린터 리뷰 이런 건 논외)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실로 우수한 이 IT 뉴스사이트에 대해 열 받는 건, 접속이 잘 안된단 거다....
...이뭐..


2007년 6월 9일 토요일

UCCC 애드시스템을 보고 땅을 치다.

http://adsystem.uccc.co.kr/


동영상 제작자와 플랫폼이 수익을 분배하는 모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가 되왔던 사항이지만, 자료를 퍼트리는 '배포자'에게 수익을 주는 시스템은 신선하다.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 뿐이 아니다. 카페나 블로그에 자동 업로드하는 기능등 배포자에게 여러 기술적 편의또한 제공하고 있다.

UCCC(유씨씨커뮤니티)는 이 공격적 운영을 통해 제법 재미를 보는 모양이다. 랭키닷컴 랭킹에 따르면, 전체 순위 37,097위(2007/02/14) 였던게 불과 넉달정도 만에 320위(2007/06/06)까지 뛰어 올랐으니 말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악의적으로 동영상을 도배하는 경우가 발생해, 일부 커뮤니티에서 차단까지 한 상황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발목잡힐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조금 정교하게 시스템을 가다듬는 다면, 부정적 요소를 최소화 하면서도 활발한 배포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굿 아이디어 아닌가.

....라지만 난 이미 올해 초에 작성한 벤처창업경진대회에 제출한 서류에 그런 아이디어를 써 놓았단 말이다. 아이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C&C 레드얼렛을 하다가, "RTS에서 생산의 프로세스를 없에고, 주어진 유닛을 상성과 지형등을 이용해 즐기게 하는 고도의 전략적 게임을 내놓으면 어떨까?"라고 먼 훗날 직접 제작할 게임을 구상하던 내 앞에 던져진 Myth는 전 세계적으로 온갖 찬사를 받으며 성공해 내 가슴을 후벼파 놓은바 있다.
지금 준비하는 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옥 같은(?) 내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이곳 저곳에서 실현되고 있다. 물론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아직 안전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라고 믿고 싶다. 얼마 안 남았다..


2007년 6월 8일 금요일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2를 보다가..


"시스템이 원하면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얼떨결에 살인범으로 몰린 후 자신은 무죄라고 말하는 벨릭에게 변호사가 해주는 말이다. 짝짝짝. 난 책을 보다 이런 구절을 만나면 밑줄을 친다. 말 자체도 멋지거니와, 주인공 형제를 억압하던 부당한 시스템의 대표 겪이던 그가 이제 시스템의 피해자로 도치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런 언어유희는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런데 이런 도치의 미학은, 비단 벨릭의 불행에 국한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모든 캐릭터가 그렇다. 열심히 제거하고 다녔더니 졸지에 자기가 제거대상이 된 켈러맨도, 악을 미워하다 보니 자기가 악이 되버린 마혼도, 악랄하게 명령을 내리지만 결국 자기도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킴도, 권력의 정점에 서지만 내려올 수 밖에 없는 대통령도.. 이 드라마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PAD MAN이 있지 않느냐고? 물론 그는 모든게 베일에 쌓여 있으니 뭐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양반, 의외로 공처가일지도? 뭐 어찌됐건, 다들 자신의 감옥에서 탈출하고자 허우적 댄다. 재미있는 건 그들의 감옥을 지키는 간수장은 스콧 필드(와 아이들) 아니겠느냐는 사실이다.

결국 모두가 사냥꾼이자 사냥감이란 얘기인데... 실로 흥미롭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현대적으로 각색된 게 프리즌 브레이크일 것이다. 근데 여기서 다시 문두로 돌아가 볼까?

"시스템이 원하면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링컨에게 누명이 씌워진 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애시당초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런 사건에 꼬일리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설령 링컨이 현명해 졌다해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제 2의 링컨, 제 3의 링컨은 얼마든지 있다. 결국 이 폭탄돌리기 게임에서 폭탄이 터진다는 시스템에 변함이 없는 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사람들을 옥죄는 진짜 감옥은 시스템이다.
과연 프리즌 브레이크가, 제목처럼 그 감옥을 설득력 있는 형태로 부술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할리 없다. 결국 우리는 존 레논의 노래를 부르는 것 이상으론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스콧 필드도 당장 눈 앞의 감옥이 버겁다. 누군들 다를까? 시스템은 구축하기도, 저항하기도 힘들다.


2007년 6월 4일 월요일

동영상 UCC의 한계


"
세상은 물질로 이뤄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엔 세상은 이야기로 구성된 것 같다."
최일구 전 MBC 앵커의 말이다. 언어란 참 재미있다. 말도 안 되는 말로(아, 이 표현 맘에 든다) 어떤 진실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전기 신호의 교류일 뿐이라고 믿지 않는 이상, 인터넷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음이 틀림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주고 받는 데이터는 단순한 전기 신호가 아니다. 그것에는 주인공이 있고, 배경이 있으며, 내용이 있다. 무엇보다 거기엔 감동이 있다.

새로운 데이터로서 각광받고 있는 대다수의 동영상 UCC를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게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수도없이 등장하는 늘씬한 여성들의 춤동작이나, 엽기적인 실험은 우리의 눈을 손 쉽게 붙잡는다. 그러나 그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나는 내가 돌아다니는 몇몇 커뮤니티에 범람하는 동영상들을 꾸준히 살펴 보는 편이다. 하지만 대개 그 결과는 같다. 특히 그것이 UCC일땐 더욱 그렇다. 왜 우리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그런 데이터에 열광해야 하는 걸까?

구성과 표현에 있어 한 가지 해답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 장르가 이질적인 것이더라도(동영상이더라도) 이야기가 포함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지난 어린 날, 부모님의 품 안에서 들었던 자장가 같은 가락이다. 나는 미래의 내 자식에게 동영상 UCC 같은 건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다. 비교육적이니 선정적이니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먼 나라의 언어처럼, 그 본질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쇼'는 열정, 흥분 따위는 전해지지만, 그건 세상을 구성하는 것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프레디 머큐리가 피맺힌 목소리로 외친 '쇼'는 그런 게 아닐게다.


2007년 5월 28일 월요일

아마추어와 프로

프로는 이 세상을 대단하게 만든다. 거대한 건축물도, 엄청난 속도도, 뛰어난 품질도 프로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아마추어라는 사실이다. 나는 여지껏 살면서 단 한번도 프로인 부모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개 그들은 누구보다 위대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베풀고 있었다. 그 자식들도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 자식의 자식들은 또 자신들의 자식에게 똑같이 그러할 것이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19일 토요일

마음 검색? 라이클!

라이클


웹서핑을 하다 발견했다.
플레이톡이나 미투데이가 MMOG 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사이트는 그보다 더 게임성이 있는 듯 하다. 가입은 안했지만 쭉 들러보니 꽤나 재미있는 사이트, 발상이란 생각이다. 단 직관적으로 게임의 룰을 이해하기가 쉽진 않았다. 자주 묻는 질문이 잘 정리되어 있긴 하지만, 나 같이 게으른 사람들에겐 그런 난해함(혹은 생소함)이 장벽이 될 수 있다.
어찌됐건 좋다. 재밌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플레이톡이나 미투데이도 마찬가지로) 이런 서비스가 단지 흥미로운 것에서 '비즈니스'로 진화하는 것에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정제되지 않은, 돈냄새 덜나는 톡톡튀는 생각들이 좋다. 구글도 한 때는 "썩 꺼져라"는 소리나 듣던 풋내나는 발상이 아니었던가.  

오늘도 웹은 덜그덕 거린다.


덧. 그렇다고 돈 냄새가 싫단 건 아니다.


2007년 5월 14일 월요일

왜 시끄러워도 괜찮을까?

질문. 당신이 듣고 있는 아래의 '음악'과, 이 음악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음악'은 같은 것일까?




내 대답은 No 이다.

음악을 일정 수준 이상 다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그 안에 오로지 몰입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가능하면 조용한 장소에서, 제법 각이 나오는 스피커 혹은 헤드폰을 끼고 왠지 눈을 감고 들을 때 비로소 음이 팔딱팔딱 가슴에서 뛰기 시작한다. 최대한 다른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빛도, 소음도, 듀가 몇시간 후인 숙제도, 소리에 민감한 아랫집 부인도 말이다. 괜히 음악 좀 감상할 줄 안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싸구려 악기라도 자기가 직접 연주를 할 때는 경우가 다르다. 서울역에서 기타를 튕기는 이들이 기차소리가 시끄럽다고 연주를 못하진 않지 않는가. 연주는 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하는 것이다. 손과 입은 그것을 실행하고, 귀는 그 자국을 트랙킹하는 존재일 따름이다.

능동적인 참여는 데이터를 재해석해, 진화 시킨다. 시끄러운 오락실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음악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는 진화한 데이터가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진화는 음이 아닌, 비트매니아의 키패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이 플랫폼이다. 소셜 네트워크니, 웹 2.0이니는 모두 그 키패드의 변환이다.


2007년 5월 12일 토요일

영어의 필요성


"회화, 회화 하지만, 사실 돈을 쓰는 영어는 별로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돈을 버는 영어이다."

"영어를 공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매우 가치있는 컨텐츠들 상당수가 영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잘 되지 않는다. 다른 공부를 하기 위해 영어는 그냥 해야 하는 것이다."

벤처창업 경진대회 1차 교육과정에서 만난 어떤 분이 하신 말씀이다.
느낀 바가 커서 적어본다.


2007년 5월 7일 월요일

시간을 달리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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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야 뭐 잔잔하면서도 진부한 그런 내용이지만은..

러프도 그렇고, 스윙걸즈도 그렇고, 브링잇 온도 그렇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그렇고.
청춘의 반짝임을 포착해낸 작품을 보면서 정겨운 미소가 세어나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내가 만드려는 플랫폼이, 무심코 새어나온 이런 작은 빛깔을 머금기를 바란다.
노력해야겠다.


Web Comic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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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으로 인해 만화는 뭔가가 변하고 있다. (결과가 좋으리란 법은 없지만...)


한국에 초고속인터넷망이 광속으로 보급되었을 무렵을 돌이켜 보면, 웹에는 변변한 만화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들 인터넷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몰랐고, 인터넷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자, 비로서 인터넷에도 만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출판만화를 스캔한 것들로서, 단지 모니터를 통해 책을 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난립하던 포탈들은 만화라는 컨텐츠에서 변변한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했고, 시험적으로 실시된 몇몇 웹상의 만화 감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강풀이니, 강도하니 하는 성공적인 작가들을 배출해 내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이들은 여전히 전체에서 볼 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주 수익도 높은 고료를 통한 것이 아니라, 영화화나 캐릭터 사업에서 유래하는 것이란 약점이 있다. 이런 부가수입에 대한 높은 의존은 안정적인 창작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열악한 창작자들에게 있어, 스타의 탄생은 언제나 고무적인 사건이다. 출판만화에 비해 그리 높은 수준의 작화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도 호재라면 호재다. 덕분에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탈 사이트에 자신들의 만화를 쏟아내고, 언젠가 메인에 자신의 작품이 뜨길 기대하고 있다(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찾아가는 경우는 훨씬 드물어 졌을듯 하다). 마린 블루스와 같이, 블로그적인 용도와 결부된 창작도 상당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규모는 질의 상승을, 질의 상승은 수요를 창출한다. 일부 포탈에 집중된 만화 유통의 채널만 다원화 되면, 작가들에 대한 대우는 어느 정도 나아질 것이다. 나름대로 미래는 밝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이 열풍 속에 변화가 존재하는 걸까? 매체의 변화는 비즈니스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만화 그 자체는 어떨까. 단지 잉크가 디지털 신호만으로 바뀐것이라면, 그래서 책 대신 모니터를 펼친 것이라면. 만화 그 자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일 게다. 만화를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웹코믹이란 것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 기대는 헛된 것으로, 웹코믹은 그저 출판만화의 연속인 걸까? 아니면 혹 새로운 혁명의 단초일까?


학문적으로 만화에 대해 커다란 식견을 가지고 있진 못하지만, 난 몇가지 측면에서 웹 코믹이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두가지만 정리해 보았다.


1. 우선 책이 모니터로 바뀌면서 발생한 공간의 재배치, 이른바 '컷'의 재해석이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몇 mm필름으로 찍는지가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은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것이다. 그것이 관객에게 작자의 시선을 옮기는 '틀'이자 '창'이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에 있어, 이런 틀이 작품을 얼마나 제한하고 혹은 확장시키는지는 단연코 흥미로운 주제이다.
만화에 있어, 그 틀은 종이였다. 물론 포괄적 의미에서 꼭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동굴벽화나 일부 실험적인 작품들을 고려하면). 그러나 최소한 산업적으로는 만화는 오로지 종이- 그것도 그리 넓지 않은 직육면체 위의 산물이었다.
'컷'이라는 개념은, 그런 종이를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발명된 도구다. 카와하라 마사토시(수라문, 해황기의 작가)처럼 단지 나누기 위한 도구에 컷의 주 의미를 두는 작가도 있지만, 컷은 배분을 통한 완급조절과 컷 너머의 시선을 능수능란히 사용하는 연출적 효과를 구현하는데 제법 쓸만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백문이 불여 일견.

데자부 <최인종의 1컷세상 / 최인종>
6화 <너에게 날리는 홈런 / 물소> (중앙에 투수로부터 타자에게 이어지는 계투장면)

이런 효과를 어떻게 종이 안의 컷으로 어찌 나타낼 것인가? 이 만화가 '1컷 세상'이란 타이틀을 담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 내가 보기에, 웹 코믹은 한컷에 최적화 되어있다. 그래서 가장 최적화된 모델은 마린블루스나, 모니 앤 스토리라고 나는 생각한다(괜히 수필류, 일기장류 만화가 범람하는게 아닐게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기존의 컷 해체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강풀의 만화는 애매하다. 그저 장면을 늘어 놓기만 한다는 인상을 받는 건 나 뿐일까? 그러나 동시에, 그래서 강풀의 만화는 흡수력이 있다. 작가가 만든 틀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 같은게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아직 웹 코믹은 컷의 해체, 혹은 진화에 있어 어떠한 모범적 결론에 도달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아직 내가 상상도 못할 가능성을 가진 상상력들이 존재하리라고 난 믿는다. 여전히 웹 코믹의 가능성은 잘려(cut) 멈춰지지 않은 채 뻗어나가고 있다.


2. 그 다음으로는 컨버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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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처가 마그리트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건 내가 아니다."


우선적으로 만화가 웹 환경에서 융합한 첫 대상은 색상이다.

이게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색상은 간단히 물체를 분리시킨다. 물론 실제 미술에 비하면 턱없이 빈약하긴 하지만, 어찌됐건 수없는 펜선과 탄탄한 뎃생 기본기를 통해 '질감'을 구현하던 기존 출판만화의 미덕이 상당부분 무용해 진 것이다. 이건 단순히 그림이 자유로워 졌다란 결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질감이 사라지면서, 스토리가 놓이던 무대이자 배경, 그러니까 '공간'이 해체되 버렸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나 <스페이스 잼>을 본다면, 그 참신함이야 어찌됐건 공간과 따로노는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이 부족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배경이 해체됨으로서, 그로부터 자유로워진 캐릭터들은 다소 비현실적인 형태로도 의연히 존재감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독자를 흡입시키는 구조만 갖추고 있다면, 다소 부족한 작화력도 충분히 커버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자체만 놓고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폭발적인 소재의 확장(순수 창작보다는 경험담류인 아쉬움은 있지만)과 쉼없는 참여를 통해, 센스 있는 일발성 창의력들이 쏟아지고 있다. 개개야 빈약할 지언정, 인터넷이란 이름의 시장은 풍성하기 그지 없다. 이전의 시스템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돌이켜 보면, 흡사 정극 코미디에서 스탠딩 코미디로 변화해간 한국 예능계를 보는 듯도 하다. 뭐, 코미디건 만화건 이 변화가 싫지만은 않다.

색상 이후, 아직 본격적으로 만화가 다른 멀티미디어와 융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시험적인 시도는 심상치 않게 접수되고 있다.
일단은 모션(움직임)이다. 예컨데

<모니 앤 스토리 / Monii>

또 음향이 있다. 차마 예는 못 보여드리겠지만, 일본 동인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부 플래쉬 만화등을 보면 풍부한(?) 음성을 만화를 읽으며 들을 수 있다.


물론 이 시점부터는 과연 이것이 만화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찰이 또한 필요하다. 소리가 나는 만화. 움직이는 영상이 있는 만화. 그것은 만화일까, 아니면 이미 다른 장르인 걸까? 이것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진화처럼 확장의 범주일까, 아니면 변질의 범주일까? 그러나 어느 것이 정답이건 간에, 기존의 만화가 가진 영역에서 아주 약간의 외도를 하는 정도라면, 이 변화는 변질보다는 진화로서 기능하리라고 믿는다. 장르의 틀보다 중요한 건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가 뭐라고 답을 내리건, 결정은 후세가 내릴 것이다.

결론은? 없다. 사실 만화란게 지향해야 할 가치가 있는 지도 의문이고(재밌으면 그만이라고 하기엔 상스럽고, 그렇다고 학문적으로 고찰하자니 애매허고), 굳이 내가 뭔가 그럴싸하게 떠들어봐야 창작자들이 참고하기나 할라나. 뭐 하신다면 감사하지만.. 해서 그냥 뒹굴.


2007년 5월 6일 일요일

2007년 5월 4일 금요일

"UCC가 비즈니스가 될 때", EMC Velocity^2 Day 세미나 발표자료

EMC에서 세미나 발표자료를 공개했다.
어차피 참석했던 나는 프린트를 가지고 있어 별 필요가 없긴 하지만..
혹시 관심있을 분을 위해 링크.

를 클릭하시면 발표자료를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14:00-14:20 등록  
14:20-14:30 Welcome 한국EMC
김만형 상무
14:30-15:00 동영상UCC의 현황과 전망
- 동영상 UCC 시대의 도래
- 동영상 UCC 서비스의 미래
아프리카 TV
나우콤 IBS사업부 마케팅팀
고창남 팀장
15:00-15:30 생방송UCC 솔루션과 적용사례
- 생방송UCC 솔루션의 소개
- 생방송UCC적용사례
디디오넷
이준호 팀장
15:30-15:50 UCC 응모작 감상 및 Break  
15:50-16:20 모바일 서비스로의 확장
- 개방망 환경에서 모바일 서비스 구현 P2Web, Web2P
디디오넷 모바일
변형민 과장
16:20-16:50 UCC 최적화 스토리지 시스템
- UCC에 최적화된 시스템소개
한국EMC
이장원 부장
16:50-17:20 EMC KSC Tour  
17:20-17:30 UCC Awards 및 Closing  



2007년 5월 3일 목요일

동료의 폭언?

같이 일하는 동생이 "형은 쿠로스 타이치를 닮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CROSS † CHANNEL 이란 게임의 주인공이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기구하면서도 웃기게 미친 정신병자.

그리고 그는 나나카 크래쉬를 실행시켰다.





...자네 뭐하는 건가?


2007년 5월 2일 수요일

당신이 잠든 사이에

느 날 눈을 떠보니 유명해져 있더라 라는 식의 이야기는 어느 계통이던 찾을 수 있다. 비즈니스적으로도, 특정한 영역을 넘어서면서 부터 급격하게 상황이 좋아지더라는 경우가 많다. 변화는 매 순간 거듭되지만, 그 결실은 어느 순간 급격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 소녀가 신데렐라의 꿈을 꾸며 잠들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일지도 모른다.
환상적인 미래만큼이나, 곤욕스러운 미래 또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좌충우돌할지라도 그 끝이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면 얼마냐 좋겠냐만은, 현실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갖은 구박과 노동에 시달리던 신데렐라의 고난이, 술주정 뱅이 남편의 폭력으로 악화되지 말란 법은 없다. 어쩌면 어린 소년이 악몽을 두려워 하며 부모를 찾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일지도 모른다.

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환상적인 혹은 처참한 미래가 아니라, 변화가 없는 내일이다. 사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1cm가 크는 성장기 어린이가 아니라면, 우리의 내일은, 한 때는 오늘이었던 어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향후 몇십년도 이와 같을 거라는 끔찍한 상상이 달가울 이는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나아지고자 열심히 노력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변하기 보다 도박을 택한다.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우연이란 복권을 손에 쥔채, 헛된 희망과 헛된 공포 속에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복권은 십중팔구 틀리기 마련이다. 비록 오늘의 의미를 내일에서 찾지만, 오늘 같은 내일을 맞이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이다.

내가 하고 싶은 충고는, 지금 자신이 어린이처럼 굴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 보라는 것이다. 곰인형을 안고 부모님의 방을 노크하거나, 신데렐라의 꿈을 다른이에게 늘어 놓는 것은 어린이만의 특권이다. 좋든 싫든 어른은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 침입자가 무서우면 무장을 해야 하고, 왕자와 결혼하고 싶으면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꿈은 어린이처럼 살아선 이룰 수 없다. 내일 아침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오늘 땀 흘려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내 블로그가 유명해져 있더라.....도 아니고, 자고 일어나 보니 트랙백이 100개가 걸려 있어서 살펴보니 지글지글 맛 좋은 스팸냄세가 나길래 싹 지우면서 든 생각을 포스팅해 본다.


2007년 4월 30일 월요일

일기토닷컴 (가칭)

결론 안 나기로 유명하지만, 그 만큼 재미 있기로도 손에 꼽히는 논제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를 쉽게 달구며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주제가 바로 '최강'에 대한 논쟁 일 것이다. 누가 최강의 프로게이머냐, 누가 최강의 만화캐릭터냐, 누가 최강의 로보트냐, 어디가 최고의 학교냐, 누가 최고의 미남이냐.. 대상은 바뀔 지언정, 사람들은 최강, 최고란 수식어에 열광한다. 저글링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스타크래프트 대회 우승은 누가 했는지 챙기는 걸 보면, 이런 열광은 사람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간, 이런 원초적 욕망과 폭소노미를 결합한 신 개념(누구 맘대로?) 애플릿 기반의 웹 게임,
일기토 닷컴.
두둥. ....을 제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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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승부, 보고 싶지 않은가? 물론 실제 게임 화면은 아니다.



이 게임은 인물들 간에 일기토를 지켜볼 수 있다. 인물 선택, 그 후 일기토 감상. 그걸로 끝.













....자, 마우스를 주소창에 가져다 대려는 당신, 잠시 릴렉스;
 
게임 자체야 이걸로 끝일지 모르지만, 사용자들의 역할은 끝이 아니다. 일기토를 할 인물을 정하는 것은 바로 사용자다. 정해진 캐릭터들 중에서 고른다는 의미 뿐만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투표를 통해, 상위 몇위 까지의 득표를 기록한 사람이 캐릭터에 계속적으로 추가된다. 크로캅과 관우의 시공간을 뛰어 넘은 대결의 감상, 더 이상 꿈이 아닌 것이다. (단 가상의 인물은 여러모에서 게임이 안드로메다로 갈 확률이 있다고 보는 바, 투표 대상은 실존 인물로 한정한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이 발상에서 한가지 문제를 발견했을 터이다. 바로 어떻게 대결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냐는 것이다. 50%로 수렴하는 대결은 의미가 없다. 금방 질릴테니까. 그렇다면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각 인물의 능력을 정해야 한다. 랜덤의 장난으로 발생하는 극히 희박한 경우을 제외하면, 왠만해선 장비가 서민정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능력치를 부여하는 것은 보통 쉬운 문제가 아니다. 상당히 상세하고 정확하다고 이름난 삼국지 시리즈의 경우에도, 일부 인물의 과대/저평가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하물며 시대를 뛰어 넘는 대결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 것인가.
이 문제는 역시 사용자의 참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구글이 '좋은 정보=사용자들이 많이 찾는 정보' 라고 규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객관적인 데이터라는 것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명확한 틀이 있을 때 유효하다. 그러나 이미 말했다 시피, 누가 그 객관성을 보장할 것인가. 나도, 당신도, 그 누구도 그럴 방법은 없다. 전자 민주주의라고 하면 오버겠지만, 나는 참여를 그 담보로 삼고자 한다. 자유로운 토론이후, 사용자들이 투표로 결정한 능력치가 곧 그 인물의 능력치가 된다. 간디의 무력은 10일까 20일까? 사용자에 달려있다. 관우의 무력은 90일까 99일까. 사용자에 달려있다! 모두가 생각하는 평균 값이 그대로 데이터가 된다. 그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기토 닷컴은 일기토를 지켜보는 게임이지만, 그 본질은 최강자 논쟁을 즐기는 것이다. 토론과 참여, 협력과 반대를 통해 최강자가 탄생한다.
기대하시라.


Maybe This Spring... Comming Soon..



2007년 4월 27일 금요일

"UCC가 비즈니스가 될 때", EMC Velocity^2 Day 세미나를 다녀오다.



인터넷 세상을 웹 2.0이란 단어가 휩쓸고 있다지만, 최소한 한국에선 그 이상으로 각광받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UCC. 최근 모종의 이유로 포탈 IT/과학 - 인터넷 섹션의 모든 기사를 읽고 있는 내게, 한 페이지에 최소 두세개는 보이는 UCC란 단어는 지겹디 지겨운 단어이다. 전 세계에서 행해지는 UCC란 단어 검색중 절반이 한국이라 하고, UCC와 각종 단어를 조합한 도메인은 한국인이 쓸어담은 형편이니 기사 제목이 그런 것쯤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UCC의 뜻은 누구나 알 것이라고 전제하고 지어낸 듯한 PCC니 RMC니 UFC니 하는 변종 단어들 마저 자꾸 튀어나온다. 한국 NO.2 포탈인 DAUM은 아예 슬로건으로 걸어 놓았다. 우리는 이미 UCC란 단어에 깊숙히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버블 속에서도 항상 재미를 보는 무리는 있는 법이다. 발 빠르게 막차 이전의 열차를 잡은 먹튀들을 일순위로 떠올려 볼 수 있겠지만, 난 그런 부류들이 차후와 차차후의 버블에 있어서도 계속적으로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몇번은 몰라도, 반복이 거듭되면 필패한다.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이 필패하는 이유가 이거다. 반대로 말하면 먹튀들의 성공은 운이란 거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버블과 관련해, 천지신명과는 독립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없을까? 있다. LOSE-LOSE게임의 전형인 도박조차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누구냐고? 두 종류이다. 하나는 뒤에서 돈 대주는 사채꾼들이고, 나머지는 자릿세를 받는 도박장 점주이다. 둘 다 게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박의 짜릿한 희열은 없을지 몰라도 이들은 조용히, 그러나 착실하게 돈을 축적해 나갈 수 있다.
그럼 UCC열풍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일단 전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들을 떠올려 보자. 생각보다 많다. 이 생소한 단어가 뜰 걸 예감하고 재빨리 책을 써 낸 사람들. 컨퍼런스 강사들. 기사거리가 없어 인터넷 뒤적거리는 기자들. 주목 받고 싶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소원성취한 몇몇 젊은이들. 하지만 좀 더 우아하게 돈을 버는 건 후자, 즉 도박장 점주.. 가 아니라 서버, 스토리지, 솔루션 업체등이다.
그 분야에서 한가닥 한다는 EMC와 디디오넷이 우아한 돈 벌기를 천명했다. 2007년 4월 27일, 강남 파이낸스 센터 18층에서 열린 'UCC가 비즈니스가 될 때'란 제목의 EMC Velocity^2 Day 세미나를 찾아갔다. 이하는 진행된 세미나의 내용이다.


1. 동영상 UCC의 현황과 전망  아프리카 tv 나우콤 IBS사업부 마케팅팀 고창남 팀장

UCC가 대세다 라는 얘기는 너무 익숙해서 그다지 영양가가 없었지만, 아프리카 TV의 포지셔닝에 대한 언급은 제법 흥미로운 주제였다. 일반적인 온디멘드 스트리밍 사이트(판도라TV, 엠엔케스트, 엠군, TV팟, 프리챌 Q, 픽스 카우, UCCC, 그외 기타)에 비해, 아프리카 TV는 라이브스트리밍을 컨셉으로 잡고 있다. 동영상 UCC란 소재로 누가 가장 성공할 지는 함부로 예측하기 힘들겠지만, 계속 끝까지 살아남는 모델은 아프리카 TV의 그것이 아닐까 했던 내 예상에 확신을 심어준 프리젠테이션이었다. 그외에 몇 개 건진 주제들을 언급해 보겠다.

* 아프리카 TV의 가능성.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보다 높은 가능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은 UCC 붐의 성립과 미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최근 UCC가 주목 받는 이유도 컨텐츠 그 자체가 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컨텐츠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동영상이야 몇년 전에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공유의 방법이 커뮤니케이션과 결합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은?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약간의 결합이 성립하고 있다. 극히 일부의 매니아들만 어찌저찌 구해서 보던 매드무비가 자연스럽게 유투브등에 업로드 돼 퍼 날라지고 리플이 달리는 걸 보면 그런 변화가 느껴진다. 어쩌면 아프리카 TV는 한발 더 진보된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 그것은 어떤 컨텐츠를 '다른 누군가와 함께 본다'는 인식이 자연스러운 아프리카 TV 플레이어의 고유한 장점이다. 아프리카 TV 플레이어는, 특별한 편집과정 없이도 방송자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개설한 채널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고, 그 과정에 일반 유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강사의 적절한 비유에 따르자면, 온디멘드 스트리밍은 게시판, 라이브 스트리밍은 채팅의 성질을 띄고 있다. 게시판보다 채팅이 우월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더 높다고 본다.

물론 그런 영광을 아프리카 TV가 달성하기 위해선 우선 채널 입장시 나오는 삼만년 광고부터 단축시킬 필요가 있다.

* 편집툴의 중요성
컨텐츠보다 중요한게 커뮤니케이션이라지만, 재미없는 컨텐츠엔 파리도 꼬이지 않으니 커뮤니케이션이고 나발이고도 없다. 결국 컨텐츠 확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보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제작 그 자체에 관여(지원이라고 표현하고 싶겠지만)하려 하고 있다. 이미 엠엔케스트는 매직원을, 아프리카는 Desktop Brodcasting을, 픽스카우나 키위는 아예 스튜디오를 사용자에게 안겨주며 자신의 플랫폼이 UCC 제작의 방법론이 되게 하려 애쓰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내 창업 아이템에서도 핵심적인 파트였는데, 미처 현실화되기도 전에 그들이 이런 니드를 찾은게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하긴 세상에 사람이 좀 많아야지..

* 동영상 UCC의 미래
카테고리의 확장을 강연자는 예언했다. 즉 남성에서 여성으로, 재미와 흥미에서 정보와 일상으로, 젊은층에서 다양한 연령층으로, 로컬에서 글로벌로, 유선에서 무선으로. 뭐 다른 건 그렇다 치고. 과연 재미와 흥미가 정보와 일상으로 확장될까?


2. 생방송 UCC 솔루션과 적용사례  디디오넷 이준호 팀장

자신들의 솔루션 광고였다. 짤막하게 정리하면
*  분산 중계지원으로 동시접속자를 엄청 많이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
*  멀티 스크린(한 화면에서 여러 채널 나오게 하는 효과)
이 정도인데,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들의 솔루션을 적용한 GSTVESHOP의 라이브 방송을 예시로 보여줬는데, 방송 퀄리티가 매우 꽤나 제법 상당했다. 살짝 놀랐다.


3. Mobile로의 서비스 확장  디디오넷모바일 변형민 과장

자신들의 솔루션 광고였다. 짤막하게 정리하면
* 모바일로도 다 할 수 있음
이 정도인데, 뭐 나 같은 모바일 폄하론자에겐 대단한 이야기다. 묘령의 여성의 동영상(어디서 본 얼굴인 거 같아 생각해 보니 한 때 떴던 대만의 조비운이란 여성)이 핸드폰상에서 스트리밍되어 재생되는 모습을 예시로 보여주었는데, 모바일이란 걸 감안하면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4. UCC 최적화 스토리지 시스템  한국 EMC 이장원 부장

한 마디로 "우리 EMC가 UCC로 사업한다는 사업자들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음."

내적으로도 영업사원에게 들을 수 있는 정보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절반 가량 외계어를 섞었음에도 부장님 포스로 내게 EMC 제품 구입의 필요성을 납득시켜 버렸다.
 
제 사업이 좀 가닥을 잡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치며.

닷컴 버블과 그 후의 웹 2.0이란 이름의 기류가 증명하듯, 현재 몰아닥친 UCC열풍도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될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생존과 패망을 결정지을까? 물론 자사 하드웨어만 사면 아무래도 상관 없을 EMC겠지만, 하드웨어는 결국 그 이용자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향후 비즈니스의 변화는 단순히 '트래픽이 증가한다'라던지 '모바일이 뜬다' 따위의 어정쩡한 명제만으론 설명할 수 없을 터이다. 지금의 UCC열풍이 그랬듯, 앞으로도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좀 더 구체적이고 생산성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고민했다면 참석자들은 물론 자신들에게도 더 가치있는 세미나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UCC를 제목으로 잡아 놓았지만, 실질적으로 UCC 자체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하드웨어 홍보행사였다.
 
물론 예쁜 가방을 받아온 나로선 큰 불만은 없다.

2007년 4월 26일 목요일

내가 블로깅을 싫어했던 이유 2


                                         왜 기분이 별로인지 이제부터 설명하겠다.


1. 블로그는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블로그의 커뮤니케이션 포지션은 다소 모호한 면이 있다. 장중한 토론을 나누기엔 리플이란 공간이 너무 좁다. 또한 소셜 네트워킹을 하기엔 컨텐츠 귀속적이다. 간단히 말해, 기존의 게시판과 방명록이 가진 장점이 없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블로그는 하나하나의 article을 잡아주는 구조로 되어있고, 커뮤니케이션은 리플로 이루어진다. "좋은 이야기 잘 봤습니다." 등의 이야기야 리플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 제대로 논지를 펼쳐놓고 토론 하기엔 영 불편하다. 트랙백과 같은 방법도 이 '불편하다'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를 만들기엔 좋은가.. 내가 볼 땐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친한 관계란 특별한 사안이 아닌 이야기도 쉽게 나눌 수 있는 사이이다. 헌데 그렇게 신변잡기 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엔 매우 부적절한 공간이 바로 블로그가 아닌가 싶다. FTA와 관련한 진지한 논설글에 놓고 "요즘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물론 이 문제야 지금 내가 쓰는 스킨처럼 방명록이야 달면 그만이니 덧없는 이야기이도 하다.


2. 블로그는 구조적으로 개설자에게 압박감을 준다.

일을 몰아서 하길 즐겨하고, 다소 완벽한 결과물에 집착하는 나 같은 사람은 블로그와 같은 '일기' 형태의 공간은 꽤나 큰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업데이트 안되는 블로그는 업데이트 안 되는 홈페이지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 압박이 심해지다 보니 최근 글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시일에 다음 글을 올리고 싶어하고, 그를 위해 좋은 포스트 소재거리를 놓치기 싫어하는 발상이 me2day 같은 보조 블로그를 이용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꼭 마감에 쫒기는 만화가가 소재 아이디어 노트를 챙기는 형국인데, 내가 볼 땐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너무 보수적이라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일기는 혼자만 볼 글로서 남 신경쓰지 않고 솔직히 적고,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자 함이라면 업데이트의 압박에서 벗어나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는 순간 내놓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블로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중간 하다.


3. 블로그는 내 맘대로 안된다.

주로 디자인에 대한 문제이다. 단순히 어떤 이미지를 상단에 놓느냐 마냐를 떠나서, 레이아웃이 상당히 고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게 아쉽다. ..하긴 스킨받아 쓰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가..


4. 정보가 총체적이지 못하다.

어떻게 보면 나의 블로그 질색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게 바로 이 항목이리라. 대개의 경우 블로그는 조각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할 뿐, 총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간단히 예를 들면, 에반게리온이란 에니메이션과 관련해 자기 나름의 해석이나 평가를 적어 놓은 글 정도야 블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에반게리온의 캐릭터, 각 편의 스토리,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의 이야기, 관련 자료등을 포괄적으로 모아 놓은 블로그는 찾기가 힘들다. 에반게리온 관련 글, 에반게리온 태그는 많을지 몰라도, '에반게리온 블로그'는 드물다는 것이다(있긴 하나?).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오히려 각 항목에 심화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불편'하지 않는가. 내가 에반게리온 해석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닌데, 블로그 사이트를 이동해 다니며 각각의 정보를 따로 얻어야겠는가?
물론 이런 불편은 내 개인적인 취향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다. 필요한 그 하나의 정보로 충분한 사람에게 이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뭇잎보다는 나무를, 그 보단 숲을, 그 보단 산을 좋아한다. 같은 논리로, (때로는 편파적일진 몰라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 까지 자신의 눈으로 정리한 '완성품'을 나는 보고 싶다. 어느 뮤지션의 특정한 곡도 듣고 싶지만, 그보다는 그 뮤지션의 삶과 음악 전체를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여지껏, 블로그를 통해 그런 목적이 달성된 개인적 경험은 거의 없다. 농산물 전문가, IT전문가, 미국 전문가, 국제관계 전문가등을 따로 만나는 것보단 그냥 FTA전문가 한명을 만나는 것이 FTA를 이해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블로그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구조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수평적으로 각각의 article을 늘어놓는 블로그란 형태에서 하나의 article로 다루기 힘든 분량의 내용에 대해선, 분명한 주제를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내용을 조직하고 전시하기엔 효과가 떨어지는 문제가 큰 것 같다. 하나 하나 벽돌을 쌓는게 만드는 입장에서 편할지야 모르지만, 벽돌만으로 만들 수 있는 건물이란 한계가 있다. 일부 뛰어난 블로거는 놀라운 필력과 관리로 특정 주제에 대한 포괄성을 획득하기도 하지만, 그런 블로그조차 '그 대단한 블로거의 블로그'란 느낌이지, '그 주제에 대한 블로그'란 느낌은 희박하다.


5. So what?

사실.. 아무리 궁시렁 거려도, 블로그는 쓸만한 물건이다. 다만.. 어쩌면, 블로그는 훨씬 더 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언급한 요소와 관계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2007년 4월 25일 수요일

내가 블로깅을 싫어했던 이유 1

블로그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듯이, 언제 블로그란 단어가 내 인생에 끼어들었는지도 정확한 기억이 없다. 대충 21세기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는 정도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시작된 블로그 찬양에 대해 내가 몇가지 일관된 불만사항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것들은 나를 뒤처진 수용자로 만들었다.

20세기말, 나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방명록은 당시 각광받던 퓨라드를 깔았고, 게시판은 블루보드인지 뭔지 하는 대충 무료배포되는 놈으로 줏어왔던 것 같다. 그 때의 내 디자인 솜씨는 깔끔한 페이지를 만드는 수준도 되지 못해, 개인적으로 예쁘거나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레이아웃에 덕지덕지 붙이는 수준이었다. 그 수준이 궁금하다면, 마이스페이스에 다수의 개인페이지들을 떠 올려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외적으론 그렇게 질이 낮은 홈페이지였음에도, 내 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꽤나 큰 시간을 들여 관심있는 정보를 편집해 놓았기 때문이다. 몇가지 게임과 에니메이션 혹은 만화에 대한 소개와 평론따위가 게재되었고 어찌저찌 알고 찾아온 사람들은 내 글과 자료에 후한 평판을 늘어놓았다. 어떤 작가의 경향, 혹은 해석에 대한 왈가왈부식으로 시작된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내 삶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내 사이트를 찾아온 이들 중엔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사람도 많았지만, 지속적으로 방문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그들과 일상사에 대해 떠들고, 가끔은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을 듯한 뉴스로 토론하고. 그러한 공간으로서 내 홈페이지는 제법 많은 역할을 해냈다.

블로그가 홈페이지를 대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이, 결국 내 판단에 결정적인 잣대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몇년 전 내 대답은 '아니오'였다. 물론 그 대답은 '정답이 아니오'가 되었다. 블로그와 홈페이지는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존재이니, 내 판단이 틀린 것도 아니다라고 구차하게 변명하고도 싶다. 하지만 이유여하야 불문, 손님이 떨어진 음식점의 주방장은 자숙해야 할 필요가있다. 하긴, 이 글이 블로그에 쓰여지는 것에서 이미 나의 패배는 분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내가 블로깅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스스로의 통찰력에 대한 자성과 웹을 바라보는 내 관점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면, 불과 몇년 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술하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부터가 본문인데.. 자세한 스토리는 다음편에.

넋두리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 해야겠다.


2007년 4월 24일 화요일

이리, 블로그를 열다.

구체적인 통계나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도, 블로깅이 근래의 대세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이 큰 흐름을 친절한 언론들은 두려움 혹은 경외의 심정으로 침 튀기며 중계하고 있고, 드디어 나는 브라운관 밖의 시청자에서 벗어나 플레이어로서 이 게임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네이버 블로그와 블로거닷컴에 시험적인 페이지를 만들어 봤지만, 대상에 대한 지배력을 중시하는 나의 성향에 의해, 직접 설치하는 테터툴즈 블로그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사실 나는 끝까지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에 망설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순간도 그렇다. 아직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급속도로 보수화된 기술 수용 행태가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RSS니 트랙백이니 하는 단어들은 아직도 내게 공허하게 들린다. 언제 부터인가 의미를 아는 것과 그것을 체득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고 있고, 그것이 갈수록 심해지는 기분. 블로깅은 그런 작은 거슬림의 대표주자로, 가슴 속에서 따끔거린 대상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블로깅은 여러 면모에서 내가 지키려고 했던 영토의 담장 기둥 아래에서 시큼한 부식작용의 향을 풍기는 존재이다. 구체적인 이유 몇 가지가 있는데, 그에 대한 언급은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어찌 됐건, 그런 내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담장을 허무는 첫 글을 지금 쓰고 있다. 내 영토에 토끼가 들어올지, 사자가 들어올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이 공간에 대해 내가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도, 담장이 허물어진 이상 뜻대로 만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희망과 공포의 양면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이 밖의 세계는 나에게 신천지이다. 담장은 나를 지키기 위해 밖의 세상을 가려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음 비행기를 타던 심정이 이랬던 것 같다.

비행기를 탈 때 어땠느냐고? ...귀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