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30일 토요일

관계는 데이터의 미래다.

UCC 동영상 서비스 업체에 대한 생각.

웹을 돌아다니다 보면, 일부 블로거의 놀라운 분석력에 놀랄 때가 있다. 특히 이 블로거가 지적하고 있는 2번의 문제는, 내가 꾸준히 주목해 왔던 사항이었기에 반갑기까지 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영상은 당장 웹사이트에 트래픽을 몰아다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웹사이트가 그런 영상 위주로 돌아가게 되면, 평범하고 별볼일 없는 영상은 저변을 잃게 된다. 그 대신 자극적이고, 내용이 없는 영상이 메인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동영상 UCC라는 유행이 끝났을 때, 그 자극적인 풍미는 일순 싸구려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오래 인기를 얻는 음식은 그윽한 것이 많다(앞서의 포스트에선 난 이것을 '스토리의 유무'로 표현한 바 있다). 이것이, 동영상 UCC업체들이 순수한 의미의 홈비디오를 보다 중시해야할 이유다. 어차피 유명한 화제의 영상은 어느 UCC사이트를 가나 다 올라와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킬러 컨텐츠는 홈비디오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블로거가 마저 지적하지 못한 사항은,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느냐는 것이다. 단지 기업들이 트래픽에 눈이 멀어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동영상이란 미디어 자체의 특성에 있다. 동영상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감각(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매체이다. 인간은 이런 자극 앞에 쉽게 피곤해 지기에, 본능적으로 오랫동안 주목하기 힘들다. 30초 안에 시청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사람들이 페이지를 옮기는 건 그런 이유이다. 30초안에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 컨텐츠란 대게 선정적인 컨텐츠이다. 미모의 여성이든, 늘씬한 몸매이든, 얻어맞는 사람이든 간에 말이다. 극한 자극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그 극한 구조를 무리하게 마무리짓는다. 이 때문에 흥분은 남지만, 스토리가 유실된다. 홈비디오는 이런 웹 동영상 매체의 특성에 썩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구조, 이른바 시스템에 있다.

홈비디오를 업로드할 사람들이 어떤 심리에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단지 보관이 필요했다면, 하드디스크도 있고 웹하드도 있고 CD-R도 있다. 무엇하러 조악한 화질로 변신하는, 혹여 악플에 고생할지도 모르는 UCC사이트에 홈비디오를 올리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바로 소통하고 싶어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웹이란 공간은 그런 소통을 전제한 공간이고, 웹상의 데이터는 모두 그런 목적을 지니고 있다. UCC라고 이름붙여지는 데이터는 특히 그런 특성을 필요로 한다. 전문적이지도 않고, 대단할 것도 없는 그런 데이터가 웹에 올라와야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오로지 업로더의 소통 욕구 뿐이다. 나는 이 소통에 대한 욕구를 '관계'라고 부르겠다.
문제는 다소 귀여운 아이가 뛰노는 영상이나,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에겐 그냥 일반인일 뿐인 배우자의 폼 재기따위를 업로드하는 행위가 그들에게 충분한 '관계'를 제공하겠냐는 것이다. 글쎄, 힘들지 않을까. 이효리나 문근영이라면 모를까,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이 시시덕 거리는 영상에 나는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피차 바쁜 몸이니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한 말에는 힌트가 숨어있다. 반대로 생각해 볼까? 상관없는 자들의 데이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나랑 상관 있는 사람이라면 그 데이터에 관계를 맺을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는 의미다! 어디서 줏어 온건지 모를 진부한 사랑타령 싯구도, 친구의 미니홈피에 적혀있을 땐 읽게 된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데이터의 가치는 꼭 그 자신에게 있지만은 않다. 그것이 학교 급우이건, 펜팔친구이건, 눈여겨 본 카페회원이건, 그냥 눈에 띄는 아이디이건 간에- 관계를 기반으로 해 데이터는 재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홈비디오와 관계를 맺을 사람이란 홈비디오의 작성자와 관계가 있는 자들이다. 홈비디오의 업로드를 장려한다는 의미는, 그들이 웹사이트에서 인간관계를- 결국 그 진부한 단어인 "소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는 의미와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동영상 UCC업체는 소셜 네트워크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가? 내가 보기엔, 자신들이 뉴 미디어인양 굴 뿐이다. 관계는 없고, 데이터만 온갖 방법으로 끌어 모은다. 마치 공중파 방송국이 시청률 경쟁을 하듯이. 그러나 그들은 실수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야 말로 데이터의 미래이다. 어째서 몇년전에도 있던 동영상이란 미디어가 새삼스래 '대세'가 된 건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생각하기 힘들면 나름의 답을 내리고 대박도 친 유튜브라도 꼼꼼히 살펴봐라. 페이지 뷰, 업로드된 영상 숫자, 팔린 가격 뭐 이런것만 말고.



하긴.. 판도라TV나 나우콤등 동영상 UCC업체들의 기사, CEO의 강연 자료등을 종합해 살펴보면 이들은 "미래엔 동영상이 대세가 될거야" 이상도 이하도 아닌 판단이 있었을 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겠다. 쩝..


2007년 6월 28일 목요일

은근한 장점의 장점

세상 모든 것엔 관성이 존재하는지라 이성을 유혹하건, 잠자는 사람을 깨우건 그 것에는 강한 자극이 필요한 법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것은 여간해선 쉬운게 아니다. 강력한 장점이 없다면, 고객들은 눈길도 잘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확보한 고객을 묶어두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관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법은, 억지로 그 상태를 유지할려고 애쓰기 보다- 자연스럽게 보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한 장점 보단 은근한 장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은근한 장점은 경쟁자로부터 잘 견제받지 않는다. 그것은 시장조사등의 데이터에 잘 드러나지도 않으며, 합리적 추론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자리에 위치한다. 그 장점을 지닌 회사 자신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설령 겨우 경쟁사의 은근한 장점을 파악했다 해도 문제는 만만치 않다. 은근한 장점은 단순히 돈을 투입해 달성되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은근한 장점은 대게 의도적이지 않게 파생된 경우가 많으며(예컨대 사용자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있다던지), 문화적인 형태인 경우가 많아 인위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자, 이제는 반대로 생각해 보자. 비록 강력한 장점을 지닌 서비스더라도 은근한 장점이 없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강력한 장점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곧 경쟁사들에 의해 견제당하기 때문이다. 그 경쟁사가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경우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공격적인 마케팅, 뛰어난 개발력등으로 무장한 거인과 힘싸움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판도라 TV가 순식간에 다음 TV팟에 밀려버린 것에는, 은근한 장점을 충분히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미래가 다음 팟플레이어 앞에 풍전등화처럼 보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쯤되면 은근한 장점, 그게 대체 뭔데? 라고 소리치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아마, 사람(사실은 일부 아날리스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소셜 네트워킹의 궁극이 그런 형태가 아닐런지.


2007년 6월 25일 월요일

모순

주식회사 설립을 하려니 사업장 계약서류가 필요하다.
창업보육센터에 들어가려 입주 신청서를 쓰자니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

....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년 6월 20일 수요일

세상에 이런 일이..

신속과 효율의 21세기에 있으리라 믿기 힘든 일이지만, 방금 겪은 일이다.

(1)다수가 설문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2)소수가 설문조사가 불필요하다고 했으며
(3)일부는 현재 사람들이 설문조사에 합리적 판단을 내릴만한 충분한 정보가 없어 설문조사는 위험이 있다고 함

그러나 다수가 설문조사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하고, 했던 말 또하고 했던 말 또하는 상황의 반복
그러다 시간이 2시간 가까이 지연되자 이제 거수를 해서 결정을 내리자는 의견이 제시
그러나 설문조사를 할지 말지를 홀에 모인 인원만으로 결정하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이 제시
그리하여 설문조사를 할지 말지를 설문조사 하자는 의견이 제시

결국 양자택일(설문조사를 위한 전체 대상의 설문조사를 할지, 설문조사를 위한 참여자의 거수 조사를 할지)의 상황에서 거수를 하기로 함.
즉 설문조사를 할지 말지를 정하기 위한 거수를 할지 말지를 정하기 위한 거수를 하기로 함.
그리하여 설문조사를 거수로 결정하지 말고 설문조사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2명 더 많이 나옴

결론적으로 설문조사를 할지 말지를 설문조사 하기로 함.

.......


2007년 6월 18일 월요일

일본 사람들은 서사성이 좋은 듯 하다.

일본 2ch VIP 게시판 유머 블로그

2ch에서 노닥거리는 네티즌도 저러 하거늘.. 하긴 소설 GO를 보면 양아치도 세익스피어를 읽는 게 일본이다. 문장력과 서사를 구성하는 힘은 많은 독서에서 오는 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2007년 6월 16일 토요일

따르릉~ 아프리카(Afreeca)TV여 비켜나세요..

다음(Daum)이 나가십니다.

다음, 생중계 및 실시간 개인방송 가능한 '라이브 팟' 오픈

사실상 다음이 아프리카TV와 곰TV에게 동시 침공을 시도하고 있는 형국.

곰TV야 그간 확보한 컨텐츠도 많고, 워낙 곰플레이어 보급률이 좋으며, CJ와의 연계등 제법 믿을 구석이 있지만.. 아프리카TV는 뭘로 승부 할텐가?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보러 다운로드 받은 팟 플레이어.. 개인방송을 보는데 그 화질이 무시무시하다.. 직접 보시면 알텐데, 이건 거의 경악의 수준이다.. 200kbps도 아니고 무려 2000kbps 란다... 뭐야 이거.. 무서워..


2007년 6월 14일 목요일

구라를 잘 치는 한국소설이 고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건 문학에서 큰 의미가 없다.


1.
선정적인 제목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우린 어려서부터 '진실되게 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최소한 구라가 미덕인 직업도 있다. 적절한 거짓말은, 진실을 보다 풍성하게 한다. 선의의 거짓말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문학성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다.

사실, 난 자기기만이 아닌 한은 거짓말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무한소의 협소한 특정 영역이고, 거짓은 그 여집합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물론이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가 합의한 애매함일 뿐 그것이 지시하는 진정한 본체는 아니다. 언어가 몸짓이나 그림, 기타의 것으로 바뀐다 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인류보완계획이라도 실시하지 않는 한, 거짓은 공기와 같은 것이다.

너무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로 빠진 것 같은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간단하다. 내가 말하는 거짓이란, 재산신고를 29만원으로 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거다. 제목에서 언급한 구라는 용이하게 작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구라이다. 언어가 메신저라면, 구라는 폰트와도 같다.


2.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등을 보고 있다 보면 감탄할 때가 있다. "참 잘도 가져다 붙였네"라고 말이다. 부정적 어투로 보이겠지만, 사실 이것은 칭찬이다. 만화왕국에서 자라서 인지는 몰라도, 그네들은 참 별별 종류의 소재들을 내용에 '가져다 붙인'다. 그것은 과학이기도 하고, 미학이기도 하며, 철학이기도 하다. 벌레 같은 존재가 된 주인공을 통해 불황 이전의 일본 남성 라이프스타일이 시체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표현하려 했다는 등의 말(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 무라카미 류)을 보고 있으면 독자로선 재미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적인 유희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여러 모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흥미란게 중요하다. 경영학도라서 그런지 몰라도, 제대로 된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질의 재화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새로운 시장을 형성시킴에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일까? 마케팅 아닌가. 상품에 흥미거리가 많다는 건, 마케팅 당담자에겐 천군만마와도 같은 일이다.

한국 문학이 죽었다는 말이 들린 건 제법 오래된 일이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볼 땐 소득 수준에 비할 때, 한국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히 정치인이 국민을 탓할 수 없듯이, 어찌 생산자가 소비자를 탓할 수 있으랴. 어찌됐건 '팔리는 소설'을 발굴해야 할 책임은 생산자에게 있다.


3.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구라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것은 29만원이 아니라, 미노프스키 입자와 같은 것이다. 소재에 매몰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설이 현실의 알레고리를 포기하는 순간 그것은 저열한 판타지 소설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소설이 소재의 다양성을 포기해야 할 근거가 되진 않는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이고, 그 허구가 바로 구라이다. 이왕 치는 구라, 좀 풍성하게도 치면 안될까? 스토리 텔링 제대로 하자는 거다.

한국 작가들은 구라는 자제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아니면 구라를 칠 상상력이 없거나. 혹 멀쩡한 인간이 벌레가 되는 등의 구라에는 독자들이 안 속아줄거라고 믿는 걸까? 글 재주는 빼어나지만 자극적 소재로 어찌저찌 장난이나 칠 줄 아는 저열한 작가일지도 모를 무라카미 류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다면 카프카도 저열한 작가인가? 카프카를 감히 무라카미 류와 같은 위치에 놓으려는 게 아니다. 소재는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사실 나는 '구라가 적고', '포장이 적은' 문학이 싫은 소비자는 아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이우혁도, 김진명도, 원태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나 같은 올드 패션 소비자는 거의 없다. 그들은 핸드폰 문자에 "밥먹었니" 라거나 "만나자"라거나 "안녕" 이라고만 쓰면 삐지는 세대이다. 그들에게 문자를 보낼 땐, 다소 미식거리더라도 "ㅋ"나 "ㅎ"나 "+_+" 따위의 이모티콘을 붙여줘야 한다. 그것이 파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소통이고, 그래서 창조이다. 귀여니의 소설을 파괴라고 생각하지 말라. 팔리는 소설엔 다 이유가 있다. 스토리 텔링은 정말 중요한, 그러나 은근히 무시되는 기술이다. 나는 여지껏 스토리 텔링이 되지 않는데도 히트 한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창천항로를 보면, 막강한 군세와 유능한 부하들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땅에 틀어 밖혀 세상을 관망만 하는 유표를 일컳어 제갈량이 "천하와 성교해보지도 않고 (학문이란 수단을 통해)혼자 자위하며 만족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한국 작가는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뉴스 제목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스즈미야 하루히 같은 소설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김언수의 캐비닛 정도의 글은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2007년 6월 11일 월요일

ZDNet Korea 홈페이지

ZDNET Korea

개인적으로 애용하는 IT 뉴스사이트. 내용의 질에 있어서 이 만한 사이트도 찾기 힘들다. IT 벤처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조언, 정보를 얻는 사이트랄까. 벌써 반년이 넘게 모든 기사를 다 읽고 있는데(물론 프린터 리뷰 이런 건 논외)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실로 우수한 이 IT 뉴스사이트에 대해 열 받는 건, 접속이 잘 안된단 거다....
...이뭐..


2007년 6월 9일 토요일

UCCC 애드시스템을 보고 땅을 치다.

http://adsystem.uccc.co.kr/


동영상 제작자와 플랫폼이 수익을 분배하는 모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가 되왔던 사항이지만, 자료를 퍼트리는 '배포자'에게 수익을 주는 시스템은 신선하다.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 뿐이 아니다. 카페나 블로그에 자동 업로드하는 기능등 배포자에게 여러 기술적 편의또한 제공하고 있다.

UCCC(유씨씨커뮤니티)는 이 공격적 운영을 통해 제법 재미를 보는 모양이다. 랭키닷컴 랭킹에 따르면, 전체 순위 37,097위(2007/02/14) 였던게 불과 넉달정도 만에 320위(2007/06/06)까지 뛰어 올랐으니 말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악의적으로 동영상을 도배하는 경우가 발생해, 일부 커뮤니티에서 차단까지 한 상황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발목잡힐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조금 정교하게 시스템을 가다듬는 다면, 부정적 요소를 최소화 하면서도 활발한 배포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굿 아이디어 아닌가.

....라지만 난 이미 올해 초에 작성한 벤처창업경진대회에 제출한 서류에 그런 아이디어를 써 놓았단 말이다. 아이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C&C 레드얼렛을 하다가, "RTS에서 생산의 프로세스를 없에고, 주어진 유닛을 상성과 지형등을 이용해 즐기게 하는 고도의 전략적 게임을 내놓으면 어떨까?"라고 먼 훗날 직접 제작할 게임을 구상하던 내 앞에 던져진 Myth는 전 세계적으로 온갖 찬사를 받으며 성공해 내 가슴을 후벼파 놓은바 있다.
지금 준비하는 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옥 같은(?) 내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이곳 저곳에서 실현되고 있다. 물론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아직 안전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라고 믿고 싶다. 얼마 안 남았다..


2007년 6월 8일 금요일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2를 보다가..


"시스템이 원하면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얼떨결에 살인범으로 몰린 후 자신은 무죄라고 말하는 벨릭에게 변호사가 해주는 말이다. 짝짝짝. 난 책을 보다 이런 구절을 만나면 밑줄을 친다. 말 자체도 멋지거니와, 주인공 형제를 억압하던 부당한 시스템의 대표 겪이던 그가 이제 시스템의 피해자로 도치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런 언어유희는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런데 이런 도치의 미학은, 비단 벨릭의 불행에 국한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모든 캐릭터가 그렇다. 열심히 제거하고 다녔더니 졸지에 자기가 제거대상이 된 켈러맨도, 악을 미워하다 보니 자기가 악이 되버린 마혼도, 악랄하게 명령을 내리지만 결국 자기도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킴도, 권력의 정점에 서지만 내려올 수 밖에 없는 대통령도.. 이 드라마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PAD MAN이 있지 않느냐고? 물론 그는 모든게 베일에 쌓여 있으니 뭐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양반, 의외로 공처가일지도? 뭐 어찌됐건, 다들 자신의 감옥에서 탈출하고자 허우적 댄다. 재미있는 건 그들의 감옥을 지키는 간수장은 스콧 필드(와 아이들) 아니겠느냐는 사실이다.

결국 모두가 사냥꾼이자 사냥감이란 얘기인데... 실로 흥미롭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현대적으로 각색된 게 프리즌 브레이크일 것이다. 근데 여기서 다시 문두로 돌아가 볼까?

"시스템이 원하면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링컨에게 누명이 씌워진 것은 필연이 아니었다. 애시당초 그가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런 사건에 꼬일리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설령 링컨이 현명해 졌다해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제 2의 링컨, 제 3의 링컨은 얼마든지 있다. 결국 이 폭탄돌리기 게임에서 폭탄이 터진다는 시스템에 변함이 없는 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사람들을 옥죄는 진짜 감옥은 시스템이다.
과연 프리즌 브레이크가, 제목처럼 그 감옥을 설득력 있는 형태로 부술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할리 없다. 결국 우리는 존 레논의 노래를 부르는 것 이상으론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스콧 필드도 당장 눈 앞의 감옥이 버겁다. 누군들 다를까? 시스템은 구축하기도, 저항하기도 힘들다.


2007년 6월 4일 월요일

동영상 UCC의 한계


"
세상은 물질로 이뤄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엔 세상은 이야기로 구성된 것 같다."
최일구 전 MBC 앵커의 말이다. 언어란 참 재미있다. 말도 안 되는 말로(아, 이 표현 맘에 든다) 어떤 진실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전기 신호의 교류일 뿐이라고 믿지 않는 이상, 인터넷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음이 틀림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주고 받는 데이터는 단순한 전기 신호가 아니다. 그것에는 주인공이 있고, 배경이 있으며, 내용이 있다. 무엇보다 거기엔 감동이 있다.

새로운 데이터로서 각광받고 있는 대다수의 동영상 UCC를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게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수도없이 등장하는 늘씬한 여성들의 춤동작이나, 엽기적인 실험은 우리의 눈을 손 쉽게 붙잡는다. 그러나 그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나는 내가 돌아다니는 몇몇 커뮤니티에 범람하는 동영상들을 꾸준히 살펴 보는 편이다. 하지만 대개 그 결과는 같다. 특히 그것이 UCC일땐 더욱 그렇다. 왜 우리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그런 데이터에 열광해야 하는 걸까?

구성과 표현에 있어 한 가지 해답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 장르가 이질적인 것이더라도(동영상이더라도) 이야기가 포함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지난 어린 날, 부모님의 품 안에서 들었던 자장가 같은 가락이다. 나는 미래의 내 자식에게 동영상 UCC 같은 건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다. 비교육적이니 선정적이니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먼 나라의 언어처럼, 그 본질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쇼'는 열정, 흥분 따위는 전해지지만, 그건 세상을 구성하는 것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프레디 머큐리가 피맺힌 목소리로 외친 '쇼'는 그런 게 아닐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