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7일 월요일

Web Comic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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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으로 인해 만화는 뭔가가 변하고 있다. (결과가 좋으리란 법은 없지만...)


한국에 초고속인터넷망이 광속으로 보급되었을 무렵을 돌이켜 보면, 웹에는 변변한 만화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들 인터넷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몰랐고, 인터넷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자, 비로서 인터넷에도 만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출판만화를 스캔한 것들로서, 단지 모니터를 통해 책을 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난립하던 포탈들은 만화라는 컨텐츠에서 변변한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했고, 시험적으로 실시된 몇몇 웹상의 만화 감상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강풀이니, 강도하니 하는 성공적인 작가들을 배출해 내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이들은 여전히 전체에서 볼 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주 수익도 높은 고료를 통한 것이 아니라, 영화화나 캐릭터 사업에서 유래하는 것이란 약점이 있다. 이런 부가수입에 대한 높은 의존은 안정적인 창작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열악한 창작자들에게 있어, 스타의 탄생은 언제나 고무적인 사건이다. 출판만화에 비해 그리 높은 수준의 작화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도 호재라면 호재다. 덕분에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탈 사이트에 자신들의 만화를 쏟아내고, 언젠가 메인에 자신의 작품이 뜨길 기대하고 있다(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찾아가는 경우는 훨씬 드물어 졌을듯 하다). 마린 블루스와 같이, 블로그적인 용도와 결부된 창작도 상당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규모는 질의 상승을, 질의 상승은 수요를 창출한다. 일부 포탈에 집중된 만화 유통의 채널만 다원화 되면, 작가들에 대한 대우는 어느 정도 나아질 것이다. 나름대로 미래는 밝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이 열풍 속에 변화가 존재하는 걸까? 매체의 변화는 비즈니스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만화 그 자체는 어떨까. 단지 잉크가 디지털 신호만으로 바뀐것이라면, 그래서 책 대신 모니터를 펼친 것이라면. 만화 그 자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일 게다. 만화를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웹코믹이란 것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 기대는 헛된 것으로, 웹코믹은 그저 출판만화의 연속인 걸까? 아니면 혹 새로운 혁명의 단초일까?


학문적으로 만화에 대해 커다란 식견을 가지고 있진 못하지만, 난 몇가지 측면에서 웹 코믹이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두가지만 정리해 보았다.


1. 우선 책이 모니터로 바뀌면서 발생한 공간의 재배치, 이른바 '컷'의 재해석이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몇 mm필름으로 찍는지가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은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것이다. 그것이 관객에게 작자의 시선을 옮기는 '틀'이자 '창'이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에 있어, 이런 틀이 작품을 얼마나 제한하고 혹은 확장시키는지는 단연코 흥미로운 주제이다.
만화에 있어, 그 틀은 종이였다. 물론 포괄적 의미에서 꼭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동굴벽화나 일부 실험적인 작품들을 고려하면). 그러나 최소한 산업적으로는 만화는 오로지 종이- 그것도 그리 넓지 않은 직육면체 위의 산물이었다.
'컷'이라는 개념은, 그런 종이를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발명된 도구다. 카와하라 마사토시(수라문, 해황기의 작가)처럼 단지 나누기 위한 도구에 컷의 주 의미를 두는 작가도 있지만, 컷은 배분을 통한 완급조절과 컷 너머의 시선을 능수능란히 사용하는 연출적 효과를 구현하는데 제법 쓸만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백문이 불여 일견.

데자부 <최인종의 1컷세상 / 최인종>
6화 <너에게 날리는 홈런 / 물소> (중앙에 투수로부터 타자에게 이어지는 계투장면)

이런 효과를 어떻게 종이 안의 컷으로 어찌 나타낼 것인가? 이 만화가 '1컷 세상'이란 타이틀을 담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 내가 보기에, 웹 코믹은 한컷에 최적화 되어있다. 그래서 가장 최적화된 모델은 마린블루스나, 모니 앤 스토리라고 나는 생각한다(괜히 수필류, 일기장류 만화가 범람하는게 아닐게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기존의 컷 해체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강풀의 만화는 애매하다. 그저 장면을 늘어 놓기만 한다는 인상을 받는 건 나 뿐일까? 그러나 동시에, 그래서 강풀의 만화는 흡수력이 있다. 작가가 만든 틀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 같은게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아직 웹 코믹은 컷의 해체, 혹은 진화에 있어 어떠한 모범적 결론에 도달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아직 내가 상상도 못할 가능성을 가진 상상력들이 존재하리라고 난 믿는다. 여전히 웹 코믹의 가능성은 잘려(cut) 멈춰지지 않은 채 뻗어나가고 있다.


2. 그 다음으로는 컨버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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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처가 마그리트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건 내가 아니다."


우선적으로 만화가 웹 환경에서 융합한 첫 대상은 색상이다.

이게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색상은 간단히 물체를 분리시킨다. 물론 실제 미술에 비하면 턱없이 빈약하긴 하지만, 어찌됐건 수없는 펜선과 탄탄한 뎃생 기본기를 통해 '질감'을 구현하던 기존 출판만화의 미덕이 상당부분 무용해 진 것이다. 이건 단순히 그림이 자유로워 졌다란 결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질감이 사라지면서, 스토리가 놓이던 무대이자 배경, 그러니까 '공간'이 해체되 버렸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나 <스페이스 잼>을 본다면, 그 참신함이야 어찌됐건 공간과 따로노는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이 부족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배경이 해체됨으로서, 그로부터 자유로워진 캐릭터들은 다소 비현실적인 형태로도 의연히 존재감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독자를 흡입시키는 구조만 갖추고 있다면, 다소 부족한 작화력도 충분히 커버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자체만 놓고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폭발적인 소재의 확장(순수 창작보다는 경험담류인 아쉬움은 있지만)과 쉼없는 참여를 통해, 센스 있는 일발성 창의력들이 쏟아지고 있다. 개개야 빈약할 지언정, 인터넷이란 이름의 시장은 풍성하기 그지 없다. 이전의 시스템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돌이켜 보면, 흡사 정극 코미디에서 스탠딩 코미디로 변화해간 한국 예능계를 보는 듯도 하다. 뭐, 코미디건 만화건 이 변화가 싫지만은 않다.

색상 이후, 아직 본격적으로 만화가 다른 멀티미디어와 융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시험적인 시도는 심상치 않게 접수되고 있다.
일단은 모션(움직임)이다. 예컨데

<모니 앤 스토리 / Monii>

또 음향이 있다. 차마 예는 못 보여드리겠지만, 일본 동인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부 플래쉬 만화등을 보면 풍부한(?) 음성을 만화를 읽으며 들을 수 있다.


물론 이 시점부터는 과연 이것이 만화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찰이 또한 필요하다. 소리가 나는 만화. 움직이는 영상이 있는 만화. 그것은 만화일까, 아니면 이미 다른 장르인 걸까? 이것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진화처럼 확장의 범주일까, 아니면 변질의 범주일까? 그러나 어느 것이 정답이건 간에, 기존의 만화가 가진 영역에서 아주 약간의 외도를 하는 정도라면, 이 변화는 변질보다는 진화로서 기능하리라고 믿는다. 장르의 틀보다 중요한 건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가 뭐라고 답을 내리건, 결정은 후세가 내릴 것이다.

결론은? 없다. 사실 만화란게 지향해야 할 가치가 있는 지도 의문이고(재밌으면 그만이라고 하기엔 상스럽고, 그렇다고 학문적으로 고찰하자니 애매허고), 굳이 내가 뭔가 그럴싸하게 떠들어봐야 창작자들이 참고하기나 할라나. 뭐 하신다면 감사하지만.. 해서 그냥 뒹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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